부산 영어상용도시? 지랄한다

by 김대일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아서 외국인이 살기 편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정녕 누구를 위한 목표인가. 340만 부산시민을 위해서인가 그에 비해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같은 외국인을 위해서인가.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영어상용도시'로 부산이 변하면 부산에 사는 나와 내 가족이 이전보다 얼마나 더 편익이 생기고 글로벌해지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시민들 사이에서 버젓이 부산 명물로 잘 불리워지던 지명이나 시설명을 꼴같잖은 영어로 바꾸질 않나(달맞이길->문탠로드, 광안대교->다이아몬드브릿지), 새로 조성된 시설에 이름을 지을라 치면 돼먹잖은 영어 단어를 잔뜩 끌어다 갖다 붙이고서는 세련된 줄 의기양양해하는 작태(센텀시티,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그린시티, 휴먼브릿지, 금빗노을브릿지, 사상리버브릿지, 감동나루길리버워크 따위)는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정체가 심히 의심스러운 그 잘난 공무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옹졸한 발상이다. 부산 '영어상용도시' 추진에 반대하는 국어단체 76개와 부산지역 시민단체 34개로 구성된 ‘부산 영어상용도시 정책 반대 국민연합(국민연합)'이 "공문서에서 외국어 남용이 가장 심한 지자체"로 부산시를 지적한 건 잘난 분들이 밸도 없이 꼴값 떠는 게 일상화되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바다.

'영어상용도시' 정책은 시민의 알 권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짓이다. 국어기본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의 향상과 지역어의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제14조(공무서 등의 작성·평가) 1항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영어상용을 추진하면 영어를 모국어라고 여기는 부산 공무원들은 국어기본법 규정을 밥 먹듯이 어기게 될 게 뻔하다.

국민연합은 부산시가 추진하려는 영어마을과 국제학교에 대해서는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 사업이라고 지적하며 성공사례가 없는 공상적 영어실험에 학생과 시민을 몰아넣고 예산 낭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도 덧붙였다. 뭣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영어상용도시 정책으로 인해 정작 공공정보 그 자체에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이 생겨 시민의 알 권리를 해치게 될 것이다. 정책이라는 것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단체의 행동 방침이라고 정의한다면 부산시의 '영어상용도시' 정책은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시민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니 과연 시의적절하고 타당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부산 '영어상용도시' 추진에 관한 한 나는 극단적인 국수주의자임을 자처한다. 국민연합 말마따나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포석이라고 하면 전문 통·번역사와 자원봉사자, 정보통신기술 등을 잘 활용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도우면 될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 외국인이 살기 좋은 글로벌 도시가 될 것이고 세계박람회 유치에도 청신호라는 따위 말 같지도 않은 주장은 영어 편의주의를 넘어 영어 사대주의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개그맨이자 역사학자이며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정재환은 한 기고문에서 한국은 외국어 상용을 강요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면서 1936년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지로에 의해 추진된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강요당한 국어 상용을 예로 들었다. 여기서 국어란 조선어가 아니라 일본어였다.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말하게 한다는 완벽한 동화의 실현을 목표로, 1942년 5월 국어전해운동과 국어상용운동을 본격화하면서 학교나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본어를 쓰도록 했다. 필자는 조선총독부의 '국어 상용'과 부산시의 '영어 상용'은 추진 주체와 대상어, 목적의 취지 등에서는 다르지만, 외국어 상용 강요라는 점에서는 같다면서 '국어 상용'은 동화의 실현이라는 식민지배의 완성을 기도한 것이었고, 영어 상용은 세계박람회의 성공과 외국인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영어 소통이 가능한 국제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자칫 부산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시민을 영어의 질곡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부산 영어상용도시를 부르짖는 그들은 과연 부산 시민인가, 한국인인가. 영어가 그리 좋으면 영어가 상용어인 그들의 나라로 떠나면 그만이다. 괜히 애꿎은 시민들 괴롭히지 말고.


​참조

- <"부산 영어상용도시 정책 폐기" 전국단체 출범, 한겨레, 2022.08.29.

- <부산 '영어상용도시' 추진에…시민단체 "무모한 실험" 반대>, 중앙일보, 2022.08.29.

- <부산 '영어상용도시' 추진에 "영어남용도시될라" 비판>, 경향신문, 2022.08.30.

- 정재환, <기고 - 외국어 '상용', 되풀이되는 악몽>, 경향신문, 2022.08.30.

- 이건범, <청사초롱- 부산 영어 상용의 운명은?>, 국민일보,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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