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떼로 개금 전철역에 내리는 진풍경이 아침 출근 길에 연출됐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는가 보더라. 인터넷을 뒤져 보니 부산진구 예비군 훈련장이 개금역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제일 번화하다는 서면에서 가까운 도심에 위치한 예비군 훈련장이 참으로 이채로웠다. 바야흐로 예비군 훈련의 계절이 돌아왔도다!
군복에 부착된 부대 마크는 당연하게도 가지각색이었다. 그 중에는 내가 애면글면 군생활 했던 강원도 동북지역 일대를 위수지역으로 삼은 사단 마크가 종종 목격돼 반가웠다. 산천은 의구하되 사람만 바뀔 뿐이라서 유배의 땅에서 겪었을 애환과 고초에 격세지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긴 얼룩무늬 군복을 입는 순간 어딘들 유배지가 아닐까. 가고 싶어 간 곳이 아닐진대 아무리 좋은 막사에서 쉰다 한들 마음 편할 리 없고 아무리 맛난 음식을 먹은들 집밥보다 나을까. 집 나오면 개고생이랬지만 2년하고도 3개월(요즘은 1년 6개월) 객지 생활이면 이 풍진 세상과 맞짱을 떠도 거뜬히 이겨낼 처세술 하나쯤 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자기 최면처럼 걸어야지만이 느려 터진 국방부 시계에 귀하디 귀한 청춘의 한때를 가까스로 맡길 수 있었던 이 나라 모든 징집병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위로를 전한다. 불모의 영역을 헤치고 나온 이들만이 '고생'이란 단어와 어울린다.
개금역에서 내린 한 무리의 예비군들 뒤를 졸졸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군복만 입으면 개가 된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현역을 방불케 하는 군복 차림으로 맵시를 한껏 부려 위용마저 헌걸찬 그들에게 압도당한 나는 그들의 태산 같은 뒷모습 뒤에 파묻힌 한갓 작고 나약한 중년의 몸뚱아리일 뿐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랬지만 부러움과 처량함이 공존했던 에스컬레이터 위였다. 하지만, 그 위풍당당함에 왜 김빠진 권태의 공기가 스멀거리는 것일까. 혹시 가고 싶지 않은 유형의 땅으로 또다시 끌려 가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운 전사의 비애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