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거망동했거나 시기상조 아니면 그 둘 다

by 김대일

드라마 <킹덤> 연출자인 김성훈의 감독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은 평단에서 외면받고 흥행에서 참패했다. 백윤식, 봉태규 주연이란 이색적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김성훈을 망작 감독이란 오명을 남기는 데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당시 관람평 한 대목.


- 백윤식 모셔다가 이게 대체 뭐고.


좌절과 시련의 터널을 헤매던 감독은 이후 절치부심해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했지만 가는 제작사마다 퇴짜를 맞는다. 망작을 연출한 감독이 쓴 시나리오라는 게 이유였다.

드라마 <킹덤> 작가인 김은희의 남편이고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인 장항준에게 하루는 잘 아는 제작사 간부가 한 시나리오 각색을 의뢰했다. 너무 잘 써 고칠 데가 없는데 굳이 왜 고치느냐는 장항준의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독한 김성훈이 집필했기 때문이라나. 한 팟캐스트에서 이 에피소드와 관련해 장항준은 이렇게 멘트했다.


- 노래도 누가 불렀느냐, 그 곡을 누가 지었느냐, 캔버스에다 붓질 한 번 촥 X표 했는데 누구는 10억이고 누구는 장난쳐?(팟캐스트 <시네마운틴> 내용 인용)


요행히 편견없이 작품만을 평가한 아무개 제작사의 지원 아래 시나리오는 김성훈이 감독해 마침내 영화화되었다. 영화 <끝까지 간다>는 2014년 개봉해 345만 관객수를 기록하고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되었다.

그릇 안의 내용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릇만 예쁘면 안에 든 게 뭐든 다 예뻐 보일 뿐이다. 단 한 명의 입질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간과했었다. 월 1만 원 유료 구독자 모집 프로젝트를 감행했던 젊은 작가도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란 예쁜 그릇 하나쯤 쥐고 있었다는 걸. 이럴 줄 알았다면 동네 글짓기 대회 나가 입선이라도 해놓고 일을 벌일걸.

내 반성하건대, 경거망동했거나 시기상조 아니면 그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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