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부산으로 귀향한 2002년 가을, 그를 처음 만났다. 보험회사 직원을 그만두고 보험설계사를 하러 부산으로 내려온 나나 보험회사 소장을 하던 중 명예퇴직 권유를 받아들인 뒤 그 회사의 보험설계사로 변신한 그나 갑장에 엇비슷한 이력으로, 또 길 하나를 두고 이웃한 아파트 주민으로 금세 친해졌다.
일 하는 곳도 같고 집도 한 방향이라 밤낮없이 쌍둥이처럼 어울려 다녔어도 둘의 성향은 천양지차였다. 맺고 끊는 단호함과 강한 추진력, 과하지 않게 집착하는 과시욕 내지 출세욕은 그를 그답게 하는 아이덴티티였고 그 대척점에 서 있던 나는 그를 동경의 대상으로 추종했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렸다. 서로의 허물을 진심어린 배려로 감싸주는 든든한 우군으로서 관계는 갈수록 돈독해졌다고 나는 확신했다. 느닷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일을 관뒀을 때 더는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으되 나라면 시도조차 못했을 지난한 도전을 자청한 그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했다. 너라서 가능한 결단이고 승산은 충분하다면서. 점심 한 끼 값 받자고 손 벌리면 눈칫밥이 더한 늦깎이 수험생의 애환을 달래 주고자 공무원 시험 학원을 찾아가 밥을 사주고 내처 저녁 술상도 받아주는 날이 허다했다. 처한 형편이 그보다는 내가 좀 나아서였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책했다. 그의 노고에 비해 내 성의가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첫 도전에서 덜컥 합격한 그는 본가가 있는 다른 구의 공무원이 되었고 집도 본가와 합가했다. 그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도 한동안 우리의 교류는 간간이 이어졌다. 다만 이전보다 그가 술값을 내는 빈도수가 늘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겠다.
세련된 일처리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구청, 동사무소를 오가며 잠재력을 만개한 그는 만날 때마다 득의양양했다. 그의 주가가 오를 무렵 나는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 쭉정이 신세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한창 의기투합했을 때 기분으로 그와 한 잔 걸치면 나는 짓이겨진 심사를 토해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나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냉소와 멸시가 묻어나는 걸 발견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어떤 속물적 잣대로도 결단코 상대를 평가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던 관계에 균열이 간 당혹감은 결국 믿었던 사람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으로 이어져 나를 괴롭히다가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람 간의 관계가 만날수록 피로해지면 더 이상 정상적이지 않다. 한때의 좋았던 기억을 볼모로 끈 떨어진 인연에 연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그가 암시한 관계 정리의 메시지를 뒤늦게나마 해독한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당연히 우리는 단절되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필사한 공책을 뒤적이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가 떠올랐다. 만약 오늘 내가 그와 만남을 시도하면 그는 기꺼이 만나줄 것이다. 하지만 허물없던 시절로 돌아가기엔 나도 그도 아마 역부족일 게다. 소설가의 말마따나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만남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