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를 밟고 나온 개구리

by 김대일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다. 두 개구리는 우유가 든 단지 가장자리에서 폴짝 뛰다가 단지 속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았다. 한 마리는 "아, 이제 끝장이야!"라고 소리치고는 이내 포기해 버렸다. 그러고는 그저 개굴개굴 울기만 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개구리는 우유에 빠져 죽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달랐다. 똑같이 우유에 빠졌지만 그 개구리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이리저리 열심히 헤엄치며 발을 저었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자 발 아래가 단단해졌다. 우유가 치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구리는 폴짝 뛰어 바깥으로 뛰쳐 나올 수 있었다.


남자가 괜찮았던 시절이 없진 않았다. 미증유의 IMF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봄, 요행히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재바르고 영특해서 같이 입사한 동기들보다 반 걸음은 앞서 나갔고 이십대 후반에 이미 경기도 인근에 번듯한 아파트도 구입했으니까. 한때 동기들한테 선망의 대상이었던 남자가 암울해진 건 결혼해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였다.

주인 바뀐 회사에 더는 못 있겠어서 명퇴를 하고 벌인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어떻게든 감당을 하겠지만 루푸스라는 희귀병을 앓게 된 아내의 병세가 심상치 않은 건 큰 근심이었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데리고 용하다는 양방, 한방 병원을 찾아다니다 곳간 비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아내는 호전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치료를 위해 장기 입원하는 빈도가 늘어나자 남자는 엄마의 빈 자리를 메우려 두 아이의 양육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엄마가 아프지만 아이들 마음까지 병 들게 할 순 없다면서 말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 주었지만 남자는 점점 탈진해 갔다. 버는 건 별로 없는데 목돈 나갈 일만 많아져서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아파트를 팔았고 들어간 지 얼마 안 지나 전셋집을 나왔으며 월세를 전전했다. 사글세를 못 내 보증금이 까졌고 집세 덜한 외지로 외지로 이사를 다녔다. 부모, 형제를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 보낸 친가뿐 아니라 유독 자기 딸 사정에만 나 몰라라 하는 장인 탓에 처가에도 기댈 바가 없던 남자는 아내가 입원한 사이 병원비, 생활비를 벌어 보려 안면 튼 교회 신자들 이 집 저 집에다 아이 둘을 염치없이 맡겨 둔 채 전단지 배부, 편의점 알바 따위 돈이 될 만한 일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달리 악전고투랴.

남자 사정에 정통한 옛 회사 동료의 주선으로 솔가해 부산으로 이주하고 직장까지 구해 산 지가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머리통이 제법 굵어진 아이들 덕에 뒷바라지 수고는 덜었을지 몰라도 아내 병은 그대로다. 최근에는 유방암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차 전보다 더 바쁘게 서울로 왔다갔다한다.

돌이켜 보면 남자의 인생은 아내의 득병 이후 마치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에 빠진 형국이다. 눈꼽만 한 개선의 기미조차 없이 자꾸 바닥으로만 빠져 들다 종국엔 숨통이 막히지나 않을지 지인들은 늘 조마조마했다. 부산에 내려와 살라고 부추긴 옛 회사 동료는 남자와 가진 술자리에서 위로랍시고 술김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못 심각하게 의향을 물은 적이 있었다. 도통한 듯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파도 애들한테는 여전히 엄마야. 주어진 시간이 얼마든 그때까지 소중한 엄마로 남게 해 주는 게 내 역할이야.

사는 건 요령이야. 인생이 개떡 같아도 뒤져 보면 그 나름의 활로는 있기 마련이지. 단, 쉬지 말고 계속 굴러야 돼. 구르다 보면 어느새 둥글둥글해져. 시련도 인생도."


우유에 빠진 개구리 우화는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시리즈 중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에서 발췌했다. 발버둥 치다 단단히 굳은 치즈를 밟고 빠져 나온 개구리는 그 남자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책의 다음 대목에서 남자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낙천주의랑은 좀 다르다. 낙천주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바로 그 현실에서 출발하는 태도다.

(중략)

아들러는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낙천적이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비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고 지적했다. 낙천적인 사람은 패배에 직면해도 놀라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지독한 비관주의자가 겉으로는 낙천주의자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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