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쓴 요양보호사

by 김대일

(노인 집에 아예 살면서 돌보는 전일제 재택 요양보호사 중에 치매 간병인 자격증까지 보유한 이는 드문 만큼 몸값이 센 편이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조건을 충족한 이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걸 지자체 일자리센터 직업상담사 노릇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 상담을 했던 한 여자 요양보호사의 사연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를 지어 본 적이 있다. 치매 간병인 자격증을 보유했고 요양보호사를 동생으로 착각한 건 똑같은 대신 여자를 남자로 바꾸고 이발소를 배경으로 넣어 허구적으로 꾸몄다는 게 차이라면 큰 차이다. 예전 글 다듬으면서 시간을 축내는 중이다. )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의 개시 손님으로 통한다. 이날만 되면 오후 7시 <김 씨네 이발소> 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면서 가게 앞을 서성이기 때문이다. 이발 의자에 앉혀 커트보를 두른 후 김 씨는 으레 9mm짜리 덧날을 바리캉에 꽂아서 그 남자의 머리를 민다. 그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명상하듯 잠자코 있다. 그 장면은 흡사 삭발례를 연상시킬 만큼 진지하다. 그런데, 그날은 어째 심상찮았다. 바리캉을 드는 김 씨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 밀지 말고 지금 머리에서 살짝 골라만 주세요. 더이상 머리를 밀 필요가 없어요.

그 남자가 <김 씨네 이발소>를 처음 찾았던 날도 일 년 전 모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7시였다. 그 남자와 처음 대면한 날을 김 씨가 똑똑히 기억하는 건 그 남자의 행색이, 아니 그 남자의 머리 모양이 기이해서였다. 급격한 탈모로 고민이 많은 이들이 즐겨 쓰는 가발은 두상과 잘 어울려야 쓰는 목적에 부합한다. 길을 걷다가 스타일이 왠지 어색해 보이면 십중팔구 머리에 가발을 덮어 쓴 사람이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은 '탈모가 창피해 이렇게라도 쓰고 다닙니다'를 홍보하려고 가발을 머리 위에 얹고 다니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러니 전문적인 가발 업체에서 자기 두상에 안성맞춤인 가발을 '맞추는' 수고를 들여야 감쪽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머리에 가발을 그냥 덮어썼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꼭 김 씨처럼 노련한 이발사가 아니더라도 보면 딱 알 만큼 어색했고 볼 품 없었다. 그렇게 안 어울리게 쓰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그 남자 머리숱은 원래 풍성했다. 근데 그 위에다 웨이브까지 진 가체를 얹은 꼴을 보고 '이 사람 정체가 도대체 뭐야?' 김 씨는 아연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남자 갑자기 가발을 훌러덩 벗더니,

​- 가발에 어울리게 깎아 주세요.

우울하게 주문했다. 9mm 덧날로 머리를 밀고 그 위에다 가발을 덮어 쓰면 괜찮아 보일 것 같다고 했더니 그리 해달랬다.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나 싶어서,

- 초면에 외람되지만, 선생님 가발은 어째 영 거시기합니다. 굳이 써야 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조심스레 물었다. 거울에 비친 그 남자가 한숨을 푹 쉬더니,

- 나는 요양보호삽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집을 방문해 수발 들고 가사 활동 도와주는 사람 말이죠.

- 남자도 합니까?

- 여자 어르신을 남자 요양보호사가 맡을 순 없지만 남자 어르신은 됩니다. 남자 요양보호사만 요청하는 분들이 꽤 계십니다.

- 선생님도 남자 어르신을 돌보는 중이시군요?

- 예. 거기다 나는 치매 간병인 자격까지 가지고 있어서 주로 치매 노인을 돌봅니다. 이리 말하면 장사치처럼 들리겠지만 같은 요양보호사라도 치매 간병인 자격을 갖춘 사람 임금을 더 높게 쳐 줘요.

- 고생하는 만큼 응당한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죠. 일 마치고 귀가하시던 중입니까?

- 내일까지 휴가라서요.

- 휴가요?

- 난 전일제 재택 요양보호사예요. 집에 기거하면서 어르신을 돌봅니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와 셋째 주 토요일에 휴가를 받아요.

- 아, 휴가 받은 김에 이발하러 오셨구나.

- 그렇긴 한데….

경증에서 중증으로 넘어간 80대 치매 할아버지 자택에 기거하면서 돌보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이태 전에 돌아가셨고 따로 나가 사는 외동아들 내외가 매달 두 번은 부친 댁에 꼭 들러 자고 갔다. 부부가 오는 날이 그 남자의 휴가일이다. 치매 노인을 돌보고 집안의 궂은 일까지 도맡는 조건으로 받는 보수는 꽤 두둑했다. 그럭저럭 지낼 만했지만 할아버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는 게 큰 문제였다. 거동에 불편함이 없고 여느 사람 못지않은 정신이었던 초기보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이상 행동이 자꾸 보였다. 가악중에 먼저 떠난 할머니나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로 요양보호사를 착각하는 일이 잦았다. 그보다 더 황당하고 난감한 건 그 남자를 앉혀 놓고 마치 친동생인 양 대할 때였다. 몇십 년 전에 헤어져 생사를 알 길 없는 남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안방에 놓여진 할아버지 가발을 자꾸 써보라고 채근하면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그 남자를 요양보호사가 아닌 친동생으로 오롯이 대했다. 이래서는 간병 자체가 힘들겠다고 판단한 남자는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아들이 토요일이 아닌 평일 저녁에 불쑥 찾아와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안 듣는 게 좋겠다는 예감이었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 삼촌이 행방불명된 지 30년도 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삼촌을 마지막으로 봤으니까요. 아버지와 삼촌은 터울이 제법 많이 지지만 두 사람을 일란성 쌍둥이라고 봐도 곧이들을 만큼 많이 닮았었지요. 외모나 덩치뿐 아니라 행동거지까지. 우애도 참 깊었더랬죠.

잠시 숨을 고른 아들은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어갔다.

- 혹시 아버지가 가발을 써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버지와 삼촌은 타고난 곱슬머립니다. 연세가 들어 탈모가 심해지자 아버지는 가발을 맞췄습니다. 가발에다 퍼머를 했지요. 건강이 안 좋아진 뒤로는 출타할 일이 별로 없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말입니다. 안방 선반 위 가발 보셨지요?

선생님께 솔직히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촌은 행방불명된 게 아니고 병사하셨습니다. 사망 소식을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직후에 알았습니다. 아버지께는 쉬쉬했지만 삼촌 가족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번창할 때 곁에서 돕던 삼촌이 자금을 유용한 뒤 잠적했더랬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던 삼촌이었지만 끝내 아버지께 사죄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으로 하직하셨지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치매인 아버지가 받아들일지 의문이었고 삼촌의 죽음이 행여 아버지 신병에 해롭지나 않을까 두려워서요.

선생님,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 여생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안방에 있는 가발을 써주십시오. 그래서 제 삼촌이 되어 주십시오. 그토록 우애가 깊었지만 배신감에 치를 떨던 두 형제가 화해할 수 있도록, 아니 아버지 심중에 찬 울화가 가시고 편안한 영면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제발 부탁합니다.

머리숱이 유별나게 많던 그 남자는 한 달에 한 번 <김 씨네 이발소>엘 꼭 들러 머리를 밀었다. 그래야 가발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 남자가 오늘은 영 엉뚱한 주문을 해 김 씨를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 신상에 변화라도?

- 있었지요. 내가 아니고 할아버지한테.

- 돌아가시기라도 했나요?

- 예, 돌아가셨어요. 엊그제.

뇌졸중을 앓은 적이 있던 할아버지가 하루는 집에서 뒤로 크게 나자빠졌다. 아들 내외가 잠시 한눈을 판 새였다. 병원에서는 척추뼈 골절로 인한 하지 마비 진단을 냈다. 응급 수술을 해야했지만 연로한데다 기저질환으로 인한 수술 후 합병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거동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다 못한 아들은 수술을 결정했다. 열 시간에 걸친 큰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절망적이었다. 임종을 앞두고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왔을 무렵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요양보호사를 데려 오라고 했다. 가발을 쓴 그 남자가 죽음의 강을 건너기 직전인 할아버지와 대면하자 할아버지는 그 남자에게 유언처럼 남겼다.

- 자네가 기중이어서 고마웠네.

기중은 기백인 할아버지의 동생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르는 그 남자는 <김 씨네 이발소> 단골이다. 올 때가 됐는데 손가락을 꼽던 차에 점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남자. 김 씨가 '이번엔 또 뭡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 남자 눈썹이 앵그리버드의 그것을 닮아서.

-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 닮았다네요, 장비 같은 눈썹을 하면. 그러니 어쩌겠어요 문신이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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