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이 없는 친구 사이처럼 친근하기 짝이 없는 아빠와 아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점방을 찾는다. 공영 주차장 폐지 해프닝의 발단이었던 인근 유치원엘 올해 들어간 아이는 머리 깎을 때가 되면 꼭 아빠와 점방을 찾는데 여봐란듯이 일부러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빠한테 구는 꼴을 보자면 아빠와 어지간히 붙어다니지 않으면 안 나올 버릇없음과 순종이 섞여 있는 것이 나는 무척 인상깊었다. 도를 넘지 않는 아이의 적당한 철딱서니는 아마도 다정다감하면서 선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아빠의 훈육 덕이 아닐까 하고 넘겨짚어 본다.
이왕 들렀으면 부자가 같이 깎으면 매출 신장에 좀 좋을까마는 꼭 아이 머리만 깎고 무심하게 돌아서는 게 아쉽다면 아쉬움이다. 그런데 엊그제 점방 문을 열자마자 득달같이 그 아빠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손님 입장하는 데 그리 기쁘기는 또 처음이었다. 단골 한 사람 확보한 기분 그 이상의 성취감이랄까. 아무튼 열심히 바리캉을 들이대다가 다정다감한 부자지간에 대한 상찬을 슬쩍 늘어놓았더니 젊은 아빠 우쭐해하는 게 역력했다. 눈치를 살펴 한 걸음 더 나갔다.
- 머리 깎으러 꼭 아빠하고만 옵디다. 혹시 아빠가 아이를 키워요?
뒷말은 사실 하도 아빠와 아이 사이가 돈독하길래 농담 반 진담 반 섞은 질문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세상이 얼마나 급변했는지 실감하는 데 무척이나 더딘 나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거였다.
- 예. 제가 아이를 키우고 애엄마가 일합니다.
이어지는 대화는 느자구없이 발동한 내 호기심에서 비롯된 구세대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구태의연한 질문에 대한 신세대의 실사구시적 답변의 이어짐이었고 이는 흡사 '인류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명언을 연상시킨다. 젊은 아빠가 머물다 간 약 15분 동안 이뤄진 대담은 그야말로 우문현답의 연속이어서 여기다가 모두 기록하는 것 자체가 창피스러울 지경이다. 하여 대강 요약만 하겠다.
치기공사로 일하는 중인 아이엄마는 출산 후 자신의 커리어를 자녀 양육과 맞바꿔야 한다는 현실에 절망했다. 산후우울증 기미가 보이는 아이엄마와 그 밑에서 점점 아이답지 않게 크는 아들이 염려된 젊은 아빠는 자기가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엄마가 일하러 나가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 양육이 체질인 듯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고 아이엄마는 처녀 적 활력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시름겨워 하던 엄마가 볼 때보다 아이가 훨씬 밝아졌다는 점이다. 아직 또래와 어울리는 데 애를 먹기는 하지만 말수도 제법 늘었고 유치원 등·하원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수입은 맞벌이할 때보다는 당연히 줄었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집은 자가고 본가가 운영하는 주차장 일을 용돈벌이 삼아 돕는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진작에 땄고 아이가 혼자 지내도 될 만해지면 관련 업에 뛰어들 생각도 있단다).
내가 주목한 건 아이 아빠의 태도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배수진을 친 병사처럼 세상 살면서 이것 아니면 곧 죽어도 안 된다는 식의 강박에 코웃음치는 유연함에 반했다. 또 양보다는 질을 더 우선시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는 여섯 살짜리 사내 아이의 유치원 등·하원을 도와주고 그 아이의 식사를 챙겨 주며 한 달에 한 번 아이의 자란 머리를 깎으러 단골 점방을 찾는 자칫 무미건조해 보이는 일상을 자원했다 해도 위대해 보였다. 요즘 젊은 친구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