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감회

by 김대일

쉬는 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막걸리 한 병 겸해 늦은 점심을 뜰 적마다 드는 바람이 있다.

느닷없이 "한 잔 빨까?" 연락 온 친구 녀석(친구면 누구든)과 동네 재래시장에 들러 부근 장산엘 올라갔다 하산한 등산객을 상대로 막걸리와 파전, 도토리묵 따위를 파는 주점에 퍼질러 앉아서 낮술 한 잔 들이켰으면.

1교시 강의부터 땡땡이치고 달려간, 이제 막 점방 문을 열려고 밍기적거리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팍삭 주저앉을 것만 같은 위태롭기 짝이 없이 허름한 학사주점 <108 강의실> 늙은 여주인을 꼬셔서 어제 팔다 남은 오뎅탕에 막걸리를 내오게 해서는 동녘에 뜬 해가 서녘으로 질 때까지 퍼마시던 젊은 날의 치기가 변형 불가인 추억의 유전자로 꿈틀대는 한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친구라면 그가 누구이건 간에 그 작자가 대낮의 대작을 청하는 것보다 더 반갑고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혼자 마시는 게 익숙해질 만도 한데 울컥해진 감회로 주접떨어 봤다. 덕분에 글 한 꼭지가 이렇게 땜빵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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