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 비만

by 김대일

발가벗고 아래를 쳐다봤는데 내 거시기가 안 보이면 보통 복부 비만이 아니다. 부친과 마누라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배가 너무 나왔다고 타박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계절이 바뀌고 옷가지가 변변치 않던 차에 아르바이트 해 받은 월급으로 큰딸이 아빠 입으라고 내복 대신 청바지 두 벌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입어 보는데 글쎄 작년에 입던 청바지 허리 치수로 주문한 청바지가, 그것도 스판인 청바지가 안 잠기는 거다. 어거지로 단추를 잠궜지만 늘어난 뱃가죽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언제 터질지 몰라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입기를 포기하고 올 봄까지 입다가 옷장에 넣어둔 역시 스판이 들어간 캐주얼바지를 꺼내 입는데, 이건 더 가관이었다. 허리춤에서 더 올라가지를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한 나는 며칠전부터 허리 줄이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부친과 마누라는 이구동성으로 저녁을 안 먹는 간헐적 단식을 강력하게 권유하는데 마음이 살짝 기울었다가 만다. 점방 문만 닫았다 하면 사정없이 밀려오는 허기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다. 맞는 바지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엊그제,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즉시 씻고 그냥 바로 자 버려야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었건만 마누라가 "자기야, 밥 비벼 먹을래?"라고 묻자 추호의 고민없이 "응" 대답하고는 세숫대야 같은 큰 대접에다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처넣고선 옹골지게 비벼 먹고 말았다. 귀가하는 남편한테 던지는 마누라의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마치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볼 요량으로 제때 끼니도 못 챙기고 점방을 지키다 온 가장을 위한 뜨거운 사랑으로 부러 착각한 김에 거하게 저녁 한 끼 때우긴 했지만 밀려드는 건 배부른 포만감 대신 다짐한 지 불과 한 식경도 채 안 지나 뒤집어 버린 참을 수 없는 나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점방 연 후로 뱃살이 많이 나오긴 했다. 손님 뜸하면 멍 때리고 앉아 군임석질을 해대는 버릇이 생긴 게 화근이었다.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면 드는 결핍감을 메우려고 뭔가를 끊임없이 입에 넣고 오물거려야 했다. 그렇게 욱여 넣어 속이 든든해지면 그나마 을씨년스러운 점방에서 버틸 수 있는 활력이 생겼고 활력이 쌓이고 쌓여 결국 뱃살이 되고 말았다는 돼먹지 않은 변명을 들이밀 수밖에 없는 나를 가엽게 여기시라. 하지만 분명한 건 이리 무식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랫배가 축 쳐져 암만 고급진 옷을 걸친들 맵시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볼품없는 중년 사내로 전락시키고 종내에는 건강까지 갉아먹는 원흉이 될 게 뻔하다는 점이다. 하여 마누라가 열받아서 집안의 바지란 바지를 몽땅 내다 버리기 전에 구국救國의 결단, 아니 구신救身의 결단이 필요할 때이다. 다이어트? 다이어트!

무작정 굶다간 기운 빠져 못 볼 꼴 보일지 모르니 지양하고 먹어도 살이 덜 찌는 음식 위주로 식단을 고쳐 볼까 한다.

1. 밥은 원래 먹던 양보다 1/3로 줄이겠다. 밥 성애자의 대단한 결심이다.

2. 요요 현상은커녕 음식을 즐기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한 개그우먼의 경험담이 귀에 꽂혔다. 주로 천사채로 요리를 해먹었다는데 포만감은 갑, 살은 안 찌더란다. 천사채 대신 당면은 어떨까. 당면국수, 비빔당면, 콩나물당면 불라불라.

3. 고구마를 쪄서 먹으면 뻑뻑해서 싫더니 생짜로 씹어 먹었더니 식감도 좋고 내 입맛에도 그만이었다. 요즘 아침은 점방에서 커피 한 잔에 생고구마와 사과 썰어 밥 삼아 우적우적 씹어댄다. 물릴 때까지 당분간 그것들로 조식은 때울까 한다.

이런 식으로 두어 달 바짝 쪼으면 허리가 쪼그라들라나? 이전보다는 덜 먹기로 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할 테다. 내게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는 따로 있다. 손님이 지금보다 2배만 늘면 총각 때 허리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거다. 핑계가 아니고 복부 비만의 근원은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때 생기는 스트레스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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