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 주차장

by 김대일

우리 건물주와 앙숙인 바로 옆 건물의 주인이자 카센터 사장은 또한 이 동네 통장으로 열일 중이시다. 그녀가 8월 중순께 서명지를 들이대며 반드시 폐지 저지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강권한 주된 이유는 도로변 공영 주차장이 없어지면 이 동네 상권이 다 죽게 생겨서 장사하는 데 애를 먹을 거라는 영세 자영업자의 아킬레스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통장의 우려와는 달리 나한테는 썩 와닿지가 않았다. 부근 식당이나 술집이야 핫풀이라고 입소문만 나면 차를 몰고 오는 외지 손님들로 들끓고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주차장은 필수일 테고 그게 마침 가게 앞 도로변 공영 주차장이라면 효과적인 영업 아이템으로 금상첨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부러 차까지 대동해 머리 깎으러 오는 손님 별로 없고 주 타깃층이 동네 사람인 동네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공영 주차장이 있거나 말거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통장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서명지에 굳이 내 신상정보를 까발리면서까지 동조하기가 영 꺼려지긴 했지만 동네 장사한다는 주제에 우리 건물주와 앙숙이면서 바로 옆 건물 주인이자 저돌적인 활동성을 자랑하는 이 동네 영향력 갑인 통장하고 척을 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는 또한 부담스러워서 마지못해 서명을 하긴 했다.

여기서 잠깐, 도로변 공영 주차장에 관한 쟁점에 대해 살펴보자. 통장 말로는 학교나 유치원 따위 어린이보호구역의 반경 150m 이내에 어린이 보행에 위협이 될 만한 시설은 철거하게 법이 바뀌는 바람에 공영 주차장을 폐지한다는 관할 지자체 통보가 왔다고 했다. 폐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을 보니 추석 전인 9월 7일부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이게 아닐까 싶었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정차가 전면 금지되어 주차를 할 경우 승용차는 12만 원, 승합차는 13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내 점방에서 50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유치원 건물이 도로변에 우뚝 서 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상업시설이 즐비한 지역에는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건물 한 채가 통으로 유치원이다. 유치원생들 등·하원 광경을 보면 적잖이 위태로워 보이긴 했다. 2차선 중복도로 사이로 난 좁은 이면도로에 유치원 통원 버스를 세워 놓는 것도 어째 불안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량은 마치 곡예하듯 위험천만이다. 그런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면 지자체의 유치원 주변 공영 주차장 폐지 조치는 합당하지만 그걸로 끝낼 간단한 사안은 또 아니었다. 주변 건물주와 상인들 생각은 많이 달라서이다.

주차장 폐지 여파로 매출 감소를 염려하는 상인들과 상권이 열악해지면 덩달아 임대차 가격 하락이 우려스러운 건물주 몇몇이 유치원 원장과 독대해 현안의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했는데 주차장을 폐지하지 않고 원래대로 유지해도 무방하니 선처를 바란다는 원장의 탄원서를 지자체에 제출하기로 약조했다. 거기에 더해 지자체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주차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이 서명한 폐지 반대 청원서까지 첨부해 지자체의 재고를 요청했다.

결론적으로 일련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었다. 현수막에 안내한 대로 폐지 공사는 진행되었고 공사 이틀 만에 주차장을 표시한 노란색 줄이 싹 없어졌다. 지자체의 논리는 간단했다(카센터의 실질적인 주인이면서 통장의 남편은 일주일마다 머리를 밀러 점방을 찾는다. 그를 통해 지자체의 강행 논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도로변 공영 주차장은 없어졌지만 계도 기간을 악용한 불법 주차 차량으로 요금을 받을 당시보다 도로변은 더 아사리판이 되어 버렸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얼마 안 있으니 주차장 폐지 공사 안내 현수막이 걸린 자리에 '○○유치원 어린이보호구역 일부해제 관련' 주민 설명회를 9월 말에 개최한다는 현수막이 관할 지자체 명의로 걸려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궁금하던 차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머리를 미는 카센터의 실질적인 주인이면서 통장의 남편이 마침 점방을 찾았길래 탐문했더니 주민들 항의가 거세 한 걸음 물러나 주차장 일부를 복원시키기 위한 주민 설명회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말은 주민 설명회라고 붙여놨지만 원상복귀시키기 위한 면피용 행사나 다름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관할 지자체 담당자로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첨예한 현안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밤잠 설쳤을 공무원의 노고를 무시하는 건 문화시민으로서의 처신이 아니다. 허나 그 노고를 뒤덮고도 남을 아쉬움이 더 크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지우고 난 자리에다 주차장 표시 노란색을 다시 칠하겠다는 거 아닌가. 지우고 나서 벌어질 경우의 수를 감안해 쥐좆만큼이나마 신중했다면 무조건 지우고 보는 짓을 그리 쉽게 진행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화지에 선을 긋고 지우개로 지운 뒤 다시 긋는 애들 장난이 아니니 그 비용이 만만찮을 게다. 지우는 데 든 비용 만큼이나 그 자리에 다시 그리는 작업 또한 인부를 고용하고 페인트를 사야 하며 주차장 선 긋는 기계도 돈 들여 모셔야 하니 비용은 이중으로 든다. 그건 다 주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다. 세금 무서운 줄 아는 지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따위 넨장맞을 짓을 꾸며 혈세를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니 나는 내 동네도 아닌데 법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말이 입에 달려 고지식한 척 하지만 틈만 나면 책임 회피의 꼼수 찾기에 혈안이 된 그 잘난 주민의 공복들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작가의 이전글시 읽는 일요일(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