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모았더니 2,800원이었다. 출근길 편의점엘 들러 모은 동전으로 김밥과 군것질거리를 사려고 마음먹었다. 개금 역에서 내려 점방으로 향하는 길에 편의점만 4군데다. 편의점 브랜드도 제각각이고 모르긴 몰라도 거기서 근무하는 인원도 특색이 있다. 이를테면 두 군데는 최소한 아침 나절에는 알바를 쓰지 않고 편의점 주인이 직접 손님을 맞는 듯 보였다. 드러나는 행동거지가 주인이 아니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깐깐해서이다. 다른 두 군데는 알바가 근무하는데 그 중 한 군데는 좀 유별나다. 알바 한 사람이 카운터를 도맡아 보는 통상적인 편의점 풍경과는 달리 거긴 자네 먼저 포스기를 찍으면 다음은 내 차례라는 식으로 두 명이 카운터를 점령 중인데 둘 다 정년퇴직하자마자 곧장 알바 전선에 참전한 듯 나이 지긋한 중년남들이다. 그들이 인상적인 까닭은 편의점 밖에서 짝다리를 짚고 서서 시시덕거리며 담배 연기를 뻐끔뻐끔 허공에다 뿜어대는 품이 알바의 편의점주화를 실현시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천하태평, 여유만만해서였다. 하필이면 내가 들를 때마다 똑같은 광경이 연출되어서인지, 입장 바꿔 생각하면 매출 증대를 위한 근무에 한시도 소홀함이 없이 열중하던 차에 담배 한 대 피울 잠시의 짬이 생겨서 둘이 동시에 피우면 휴식 시간이 한 사람 분으로 절약할 수 있어 시간이 곧 돈이라는 고용인스러운 마인드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가상하다는 찬사는 못 들을망정 하필 둘이서 담배 피우는 아주 찰나의 망중한에만 꼭 편의점을 찾는 바람에 괜한 오해를 사 억울해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타임루프에 갇힌 듯이 반복되는 패턴에 맞닥뜨린 나는 그들을 고용한 편의점주의 하해와 같은 고용관을 찬탄해 마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젊은 알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굼뜬데다 간혹 눈치까지 설핏 삶아 잡수신 듯한 행태를 보이는 그들을 고용한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2,000원짜리 김밥, 1,500원짜리 삼각김밥, 1,500원짜리 새우칩, 도합 5,000원어치를 산 뒤 동전 2,800원을 먼저 건넸다. 나머지는 카드로 결재해 달라며 리더기에 카드를 꽂았다. 동전을 받을 때까지는 무덤덤해하던 직원이 별안간 긴장하는 듯 보였다. 스캐너 레이저로 물건 바코드를 찍긴 다 찍었지만 포스기 앞에서 계산을 망설였다. "잠시만요"를 연발하면서 목적지를 잃은 손가락이 허공을 맴돌았고 그걸 불안하게 지켜보던 다른 직원은 여차직하면 대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벼르는 듯 보였지만 그의 경직된 표정으로 미루어 그닥 미덥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결재가 이뤄졌다면 2,200원이 결재됐다는 은행 문자가 한 번만 오면 된다. 하지만 총 다섯 개의 문자가 울려서야 가까스로 거래는 일단락되었다. 포스기 앞에서 무척 당황한 직원은 현금 2,800원을 받았음에도 카드 2,800원을 결재했고(첫 번째 문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한 옆 동료가 재차 포스기를 만지작거리자 이번에는 2,200원이 결재되었다는 문자가 울렸으며(두 번째 문자), 그런 그들의 모습이 몹시 못마땅했던 내가 잘못을 지적하자 부랴부랴 2,800원 카드 결재 내역을 취소했지만(세 번째 문자), 너무나도 긴장한 나머지 그냥 놔둬도 될 2,200원 카드 결재 내역까지 취소하고 마는 촌극이 벌어졌다(네 번째 문자).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뭐하자는 거냐고 내가 부러 언성을 높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붉게 상기된 얼굴의 두 직원은 늦은 나이이건만 이 멀고도 험한 편의점 알바의 임무를 기필코 완수하겠노라는 당찬 의지를 드러내듯 핏발 선 네 눈을 포스기에 오롯이 고정한 채 기어이 카드 결재를 성공시켰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2,200원 카드 결재가 이뤄졌다는 마지막 문자가 마침내 당도했다.
꽤 오래 지체시킨 손님한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면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일이 익숙지가 않아서'라는 군말을 달았지만 궁색했다. 내가 그들을 봐온 지가 올 3월 점방 차렸을 때부터 7개월이 지나가니 그런 말은 아니 들은만 못하다. 하지만, 편의점 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불쾌했던 기분은 어느새 울적함으로 변질됐다. 안 가르쳐 주면 못하는 키오스크 앞에서 망연자실해하는 중장년층의 디지털 격차가 이슈가 될 만큼 세상은 나이 든 이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편의점 직원들도 분명 일부 현금 계산 일부 카드 결재라는 포스기 사용 방법을 배웠음에 틀림없지만 썩 흔치 않는 상황에 처하자 배웠던 게 금세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할 줄 알지만 마음처럼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이 그들의 슬기로운 편의점 알바 생활을 옥죄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마스크를 써서 불쾌한 표정도 잘 드러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이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나는 잔말 안 하고 진득하게 기다렸어야 했다. 그들이나 나나 디지털 앞에서 헤매기는 '도긴개긴'인 중년인데 말이다.
(집 앞 유명 햄버거 체인점은 언젠가부터 직원이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한번은 막내딸한테 가오 잡으려고 보무도 당당하게 햄버거를 혼자 사러 들어갔다가 식겁을 했다. 키오스크는 난공불락의 성 같아 보였고 내 의사를 반영시키자면 무엇을 눌려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다 결국 막내딸을 불러냈다. '도긴개긴'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