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택한 처신

by 김대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글을 인용하면서 써내려간 글은 2021년 6월 10일부터 '1일 1글'을 시도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쓴 첫 글이다.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이라는 제하의 글은 한때 보험설계사로 같이 근무하면서 친해졌지만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이른바 사회에서 만난 친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전 글 약간 고쳐 옮기면 다음과 같다.


​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귀향한 2002년 가을에 그를 처음 만났다. 보험회사 직원을 그만뒀는데 보험설계사를 하러 부산으로 내려온 나나 보험회사 영업소장을 하던 중 회사의 명예퇴직 권유를 받아들인 뒤 그 회사 보험설계사로 변신한 그나 한동갑에 엇비슷한 이력으로, 무엇보다 산책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아파트 주민으로 금세 친해졌다.

일하는 곳 같고 집도 한 방향이어서 밤낮없이 어울려 다니긴 했지만 둘의 기질은 천양지차였다. 맺고 끊는 단호함, 강한 추진력, 겉으로는 과해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에 단단히 품은 출세욕 내지 과시욕은 그를 그답게 만드는 아이덴티티였고 그 대척점에 서 있던 나는 동경의 대상으로 그를 추종했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렸다. 상대의 허물을 진심어린 배려로 감싸주는 든든한 우군으로서 관계는 갈수록 돈독해졌다. 느닷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면서 그가 나와 다니던 보험회사를 관두자 더는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보다는 나 같으면 시도조차 못했을 지난한 도전을 자청한 그에 대한 경외감이 더 컸다. 너라서 가능한 결단이고 너라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건 당연했다. 점심값도 눈치밥 먹어가며 집에다 손을 벌려여 하는 늦깎이 수험생의 처지를 달래 주려고 학원을 찾는 일이 잦았던 나였다. 밥을 사고 내처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저녁 술상을 받아 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처한 형편이 그보다는 내가 좀 나아서였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내 부끄러웠다. 그의 도전과 성취를 향한 노고에 비해 내 성의는 너무 초라하다고.

첫 도전 만에 덜컥 합격을 하고 그의 본가가 있는 다른 구의 공무원으로 발령이 나자 그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본가와 합가를 했다. 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교류는 면면히 이어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보다 그가 술값을 내는 빈도수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구청, 동사무소를 오가며 세련된 일처리, 거침없고 위트 넘치는 말주변과 특유의 친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잠재력을 만개한 그는 만날 적마다 득의만만했다. 그의 주가가 한창 오를 무렵 나는 일마다 쪽박을 차 쭉정이 신세나 다름없었다. 그와 대작할라치면 나는 우리가 너나들이하며 의기투합했을 적 기분으로 돌아가 짓이겨진 내 신세를 자책하며 울분을 토해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나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서 냉소와 멸시가 묻어나는 걸 발견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속물적 잣대를 들이대 상대를 평가하는 우를 결코 범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던 우리의 관계에 심상찮은 균열이 간 당혹감은 결국 믿었던 사람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으로 이어져 나를 두고두고 괴롭히다가 결국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만날수록 피로해지는 관계라면 더 이상 정상적이지 않다. 한때의 좋았던 기억을 볼모로 끈 떨어진 인연에 연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그가 암시한 관계 정리의 메시지를 뒤늦게나마 해독한 나는 폰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게서 연락이 온 적도 없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단절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가 떠올랐다. 만약 오늘이라도 당장 내가 만남을 시도하면 그는 옛정을 생각해서 만나 주긴 할 것이다. 하지만 허물없던 시절로 돌아가기엔 나도 그도 힘에 부칠 게 분명하다 소설가의 말마따나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만남이기에.(20210610)


​먼저 단절을 택한 처신이 옳았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의외로 깊고 오래 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조차 영악하게 굴려는 이에게는 심상한 일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은 둔치는 버겁기만 하다. 세상 어떤 끈보다 질긴 인연이란 끈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어서다. 그럼에도 내가 먼저 끊었다. 난생 처음 친구라 불리는 이로부터 나란 존재가 하찮은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모멸감이 내 정서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고 내가 먼저 단절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아 택한 자구책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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