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휴는 노魯나라 재상으로 물고기를 좋아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투듯 물고기를 사서 그에게 바쳤으나 공의휴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동생이 간언하였다.
“물고기를 좋아하면서 받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대답하길,
“무릇 물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이다. 물고기를 받게 되면 반드시 천하 사람들에게 낮추는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고, 천하 사람에게 낮추는 태도를 가지게 되면 법을 왜곡시켜야 할 것이다. 법을 왜곡시키게 되면 재상 자리에서 면직될 것이다. 재상 자리에서 면직되면 비록 물고기를 좋아하지만 반드시 (그들은) 나에게 물고기를 줄 리 없을 것이고, 나 또한 물고기를 스스로 공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물고기를 받지 않으면 재상 자리에서 면직되지 않을 것이고, 물고기를 좋아해도 내가 오랫동안 스스로 물고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이 자신을 믿는 것만 못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위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김원중 역, 『韓非子 外儲說 右下』에서)
『한비자』를 읽던 중 특히 가슴에 와닿았던 대목이다. 공짜 좋아하다간 그나마 가진 것마저 거덜날 수 있다고 경계를 촉구하지만 성의라면서 주는 걸 안 받자니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왜 그리 까칠하냐는 소릴 듣기 싫어서 넙죽넙죽 받아먹은 축의금이 적지 않다.
요새 고민이 다른 게 아니다. 점방 개업 때 축의금 건넨 한 지인의 자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단다. 개업 축하 부조금으로 받은 여남은 봉투 중에 두툼하기로는 단연 으뜸이었는데 받을 때야 이게 웬 떡이냐며 달았지만 되갚으려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값으로 봉투를 채우자니 내 형편에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고 나 몰라라 생까자니 천하의 몹쓸 놈이 되기는 또 싫다. 대충 내 형편을 아는 그 지인 경사를 전하면서도 부담 갖지 말라고 몇 번을 곱씹어 댔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봉투를 어떻게 채워야 서운하지 않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안 받고 안 주기 혹은 안 주고 안 받기. 모진 감이 없지 않지만 질척거리지 않고 훨씬 깔끔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