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밥 짓는 얘기

by 김대일

한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제일 악평이 '쌀로 밥 짓는 얘기'라고 했다. "버스를 탔는데, 내렸어요"나 "밥을 먹었는데요, 배가 불렀어요" 식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뜻하는 방송 전문 용어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금기시해야 할 글쓰기로 '모르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 '아는 사람의 아는 이야기'라면서 쌀로 밥 지으면 안 되고 모르는 사람 얘기해서도 안 되며 작가 혼자 관심 가지는 모르는 얘기, 너무 진지한 얘기는 더더욱 안 되지만 조미료처럼 약간의 재미와 재치가 들어간 감칠맛이 나는 글을 늘 궁리해야 하는 작가의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늘어놓는 걸 보면서 재밌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글 쓰겠다고 설치는 나 같은 얼뜨기한테는 묵직한 반면교사로 다가온 것도 맞는다.

작가인 장정일이 쓴 칼럼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대목이 라디오 작가의 언급과 맥락이 비슷해서 연식이 좀 되긴 했지만 주워섬기기로 한다. 장정일은 2018년 5월에 기고한 칼럼(<장정일 칼럼>, 한국일보, ​2018.05.03.)​에서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진보언론연구』(이봉수, 이음)라는 책에 나오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칼럼니스트의 글이라면 있다는 네 가지 ‘i’를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새로운 정보가 있다(informative). 둘째,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intellectual). 셋째, 흥미롭다(interesting). 넷째, 영향력이 있다(influential).

‘i’별 각론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 내 식대로 의미를 풀어봤다. 깨알 같은 글자가 눈앞에서 알짱거릴 때 읽을지 말지는 열거한 네 가지 'i'에 의해 선택되는 게 아닐는지. 이를테면, 피 같은 시간을 할애해 읽겠다고 작정할 만큼 글은 재미가 우선 있어야 하고(interesting),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본전에 부합하는 뭐라도 하나 건질 게 꼭 있어야 하며(informative), 당신이 원하는 지식이 이 글에 담겨져 있다며 한 움큼의 IQ 지수 상승을 착각하도록 선동을 일삼았는데 독자가 그에 홀딱 넘어갔다면 대단히 성공적인데다(intellectual),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낮에 읽은 글의 한 대목이 불쑥 떠올라서는 그걸 밑천 삼아 개구라를 시전하니 좌중에서 ‘우와, 니 진짜 똑똑하네!’ 찬사가 쏟아진다면 어깨뽕이 하늘을 찌르는 건 지극히 당연하나니(influential), 그런 글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양식良識으로써 대접받지 않을까 싶다.

그걸 잘 아는 녀석이 메모장 앱에 천 개가 훌쩍 넘는 메모를 남겨놨어도 글 쓰는 재주는 여전히 땅바닥을 벅벅 기니 평생 어정뜨기로 살 팔자간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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