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에 부산에서 꽤 큰 규모를 자랑하던 보험판매법인에서 탈 많았던 내 보험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여러 보험회사 상품을 입맛대로 골라 팔 수 있는(더 솔직해지자면 수당이 더 후한 보험회사 상품을 골라 집중적으로 팔 수 있는) 보험판매법인에는 보험 영업이라면 일가견을 가진, 그 바닥에서는 닳고 닳은 보험설계사들이 수두룩하다. 영업에는 천부적으로 젬병이면서 썩은 동아줄인 줄도 모르고 십수 년째 보험업 주변을 배회하다 뒤웅박 신세로 전락한 마당에 날고 긴다는 그들 틈에 끼어 보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던 건 순전히 회사를 옮기는 조건으로 주는 알량한 보상금에 눈이 멀어서였다. 직전 회사에서 거둔 수당을 근거로 보상금을 책정해 주는데 그 법인 기준에서는 최하 등급이나 다름없던 나는 5백만 원이란 일시금에 그저 감지덕지했다. 허나 세상에 공짜란 없어서 명목은 보상금이지만 실질은 직전 회사에서 낸 성과 이상을 여기서도 창출한다는 전제 하에 미리 당겨준 조건부 성과급 성격이 짙다. 그러니 법인이 제시한 기준 이하로 영업 성과가 부진해 계약서 상에 정한 계약기간 만료 전에 회사를 관둔다면 그 시점에서 환산한 반환금을 게워 내야 하는 채권 채무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받을 때야 공돈인 양 달콤했지만 받은 만큼 성과를 끊김없이 내야 하는 강박적인 일상은 사람을 오금 저리게 만들었다. 배짱과 뻔뻔함의 가면이 두꺼워야 영업력은 배가된다. 그걸 키워 주려고 보험회사는 보험 영업에 최적화된 영업 스킬을 금과옥조처럼 보험설계사한테 전수시키기에 바쁘다. 가족의 생명과 안전, 안락한 노후생활을 들먹이며 가증스러운 입발림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해야 돈이 벌린다. 후림대수작을 작렬해 보험회사가 미는 주력상품을 얼마나 많이 팔아재끼느냐가 보험설계사의 능력을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다. 선천적으로 뻔뻔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오랫동안 보험회사 주변을 헤매고 다녔는지 나도 이해가 잘 안 가지만 하여튼 버는 건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보험 장돌뱅이 신세를 청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영업 성과 최저 마지노선에 겨우 턱걸이하면서 계약기간을 근근이 다 채운 뒤 미련없이 보험업을 떠났다.
엊그제 쉬는 날 느지막한 오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번호만 찍혀 있는 걸 보니 내 주소록에 없는 연락처였다. 이럴 경우 나는 모르는데 상대가 나를 알거나 안면은 서로 있지만 굳이 연락처를 저장해야 할 만큼 돈독한 사이는 아닌, 이도 저도 아니면 개인 연락처를 가장한 스팸이나 보이스피싱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서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늙수그레한 장년의 여자가 새된 목소리로 되게 친근한 척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그녀가 누구라는 걸. 그녀는 보험설계사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보험판매법인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 보험설계사였다. 물론 그녀는 거기서 이미 오래전에 터를 잡은 잔뼈 굵은 고참이었고 무엇보다 그녀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 보험판매법인의 오너가 그녀의 조카여서 당시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서였다. 오너 프리미엄이 영업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니 물어봐서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꾸준하게 고성과를 거두는 제법 잘 나가는 '영업 실장님'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영업 방식은 무모하면서 막무가내식이라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원래 아는 사이건 처음 보는 사이건 상관없이 만나자마자 곧장 영업을 매조지하려 드는 스타일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저돌적이어서 일견 오랜 영업 경력에서 우러난 자신감의 발로로 비춰지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오로지 제 이익의 관점에서만 헤아리고 이를 잣대로 사람을 솎아내는 전형적인 감탄고토형 방식이라 영 마뜩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면서도 내가 관둘 때까지 서로 데면데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것도 그 회사를 관둔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연락처도 몰랐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녀는 내가 커트점을 개업한 사실을 들어 축하할 겸 방문하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뜻을 내비췄다고 표현은 했으나 통화가 이뤄지는 순간 이미 방문은 기정사실화된 것인 양 일방적이었다. 나는 안다. 그녀가 내 점방을 방문하려는 긴한 이유를. 우연히 최근 내 근황을 주워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영업 셈법하느라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을 게다. '점방을 버젓하게 차릴 정도면 밑천이 없지는 않을 테고 개업한 지 7개월 지났으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이쯤에서 적금 상품 하나 권하면 딱인 타이밍이다!', 내가 그 법인을 관두고 10년 동안 단 한 번의 만남도,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뻔뻔하게 내 점방을 찾겠다고 들이대는 건 오로지 그 이유 하나뿐임을 썩어도 준치라고 십수 년을 보험 영업판을 벅벅 긴 경험으로 직감했다.
그녀가 아쉬웠다. 뻔히 다 아는 사이끼리 그렇게 뻔뻔한 것만이 능사였을까.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빈말이나따나 먼저 위로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보험설계사도 보험 파는 장사치고 보면 장사치 애환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빈 점방에서 속끓는 당신의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느냐며 정말 빈말이나따나 공감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일 그녀가 내게 설령 가식적이라고 한들 아주 약간의 정성을 표했다면 나는 그녀의 방문을 기꺼이 수용했을 것이다. 그녀는 전화 말미에 내 점방의 주소를 문자로 찍어 달라고 했고 나는 통화가 끝난 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남겼다.
잊지 않고 연락 주시니 고맙기는 합니다. 다만 오시겠다는 말씀은 재고하셨음 합니다. 보험 현장을 여전히 누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세일즈에 여념이 없으신 분의 금쪽같은 시간이 줄줄 새나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왜 이 말씀음 드리냐면, 모르는 동네에서 생짜배기로 점방 차린 지 7개월이 다 지나갑니다만 천 원짜리 푼돈 모아 월세, 고정비 빼고 나면 제 점심값도 채 남지 않는 날이 허다한 주제에 뭔 보험, 재테크할 요량이 있겠습니까.
개업 인사 차 방문하시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영업의 일환이시라면 헛다리 짚으신 겝니다. 모쪼록 선생님 귀한 시간 축내는 원흉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보험을 해본 사람으로써 가지는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 마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