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

by 김대일

신문 볼 여가가 없을 만큼 점방이 바빠진 것도 아닌데 요 근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린 신문. 개차반이 다 된 나라 꼬라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은 또 무슨 희한한 망발로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자유' 시민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지 국정은 제쳐 두고 코미디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데 열일하는 높으신 분의 행각을 하루도 안 거르고 중계해 주는 신문을 차라리 안 읽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둘러대는 건 말 같지도 않은 핑계일 뿐이다. 그저 내가 게을러빠져서 그런 거다. 그래도 신문값 아까운 줄 알면 헤드라인이라도 주워섬기련만 기다리는 손님 심심풀이로도 지면이 들춰지지 않으면 손때 한 번 안 묻히고 배달된 채로 고스란히 폐지 수집함으로 직행하는 날이 허다한 건 남들이야 별일 아닌 성싶어도 나한테는 자못 심각한 사태다.

읽는 걸 꺼리면 나 스스로 무료함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 읽고 쓰는 소일거리를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내 정신머리가 아둔해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더디게 해야 한다(보는 건 낭비적 행위로 여겨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허구헌 날 TV 틀어놓고 유투브 끼고 사는 주제에 앞뒤가 안 맞는 소리인 줄 잘 안다. 대신 점방 TV는 개점해서 폐점까지 켜져 있긴 해도 손님이 안 들면 음소거 상태를 유지하고 유투브는 점심 먹을 때만 잠시 쳐다보는 것으로 보는 행위에 대한 내 냉소적 반응을 관철시킨다). 하여 강제적으로라도 신문을 읽기로 했다. 다만 목적 없이 지면을 펼치다간 자칫 비관주의에 빠져 애꿎은 신문이나 찢어발길 우려가 없지 않아서 5년 전 블로그를 막 개설하고 한동안 신문을 읽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기사나 칼럼은 쟁여뒀다가 게시글로 갈음하던 짓을 재현할까 한다. 마음이 동하면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는 게 아니라 한 자 한 자 타이핑을 쳐 전문을 옮기기도 했는데 남들이 보면 쓰잘데기없고 번거롭기 짝이 없는 뻘짓이라고 비웃음을 사겠지만 나름 효과는 있다. 소설을 통째로 필사하면 그 소설가의 글투를 닮듯 신문의 기사나 칼럼을 옮기다 보면 신문 필체의 명쾌함과 논리정연함을 닮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무료해지기 직전인 내 일상을 일상화시키는 게 더 시급하다. 그러자니 지금은 사서 고생할 작정을 해야 한다.

<이용균의 초속 11.2km-'한 우물 조기 교육'이라는 신화>

종종 이런 e메일을 받는다.

“야구 기자가 되려면 어떤 학과를 가야 하나요?"

메일 제목을 보며 한참 생각을 한다. 질문 앞에 두 글자를 붙여주고 싶다. ‘좋은 야구 기자가 되려면 어떤 학과를 가야 하나요?’ 사실 큰 차이는 없다. 답변에도 차이는 없다. “어차피, 야구 기자 학과는 없습니다라고 답을 하려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검색해보니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에는 스포츠 저널리즘 학사 과정이 있다)​

스포츠에는 일종의 ‘조기 교육 신화’가 존재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재능을 드러내고, 특정 종목의 ‘한 우물’을 판 끝에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는 신화가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세계다.​

타이거 우즈가 대표적이다. 3세 때 골프 신동으로 TV에 출연했고, 같은 해 집 근처 정규 골프장 9홀을 돌면서 11오버파를 기록했다(18홀 기준 94타!). 8세 때 처음 정규코스 80타를 깼고(18홀을 80타 이하로 쳤다는 뜻), 11세 때 아버지를 이겼고, 12세 때 70타를 깼다. 생후 7개월부터 보행기를 탈 때 퍼터를 끌고 다닌 ‘천부적 재능’은 우즈가 ‘골프 황제’가 된 비결로 믿어진다.​

많은 이들이 우즈를 꿈꾼다. 재능을 찾고, 어릴 때부터 ‘올인’을 통해 대박을 꿈꾼다. 심지어 훈련과 대회 참가를 위해 학교도 포기한다. 노력과 끈기는 절대 윤리다.​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책 <Range>(‘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에서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가능한 한 늦게 전문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적었다. 체계가 엉성한 환경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는 ‘샘플링 기간’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몸을 쓰는 기술들을 폭넓게 습득할 수 있고, 그다음에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알 수 있다. ‘조기 재능 발견→한 우물 올인’ 전략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성공을 위한 더욱 핵심적인 전략이라는 얘기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린 것은 생애 말년의 약 2년이었다. 미술 중개업과 기숙학교 보조교사, 서점 점원을 거쳐 선교사가 됐다. 모든 분야에서 실패한 뒤 33세 때 미술학원에 갔지만, 드로잉에 대해 혹평을 받았다. 고흐의 실험적 그림은 오랜 ‘샘플링 기간’ 덕분이었다.​

2022시즌 62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바꾼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도 야구에 올인하지 않았다. 고교시절 농구, 풋볼, 야구를 오가는 키 2m의 덩치 큰 선수였다. 풋볼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아유 지겨워, 빨리 농구 시즌 왔으면 좋겠다고 투덜댔고, 농구 시즌이 시작되면 “코트 왔다갔다 뛰는 거 정말 지겨워, 야구는 언제 시작하지라고 묻던 소년이었다. 정작 야구 시즌이 되면 “풋볼 시즌 언제 오나라고 생각하는 천진난만 학생 선수. 대학에 가서야 ‘야구만 하는 선수’가 됐다. 농구와 풋볼, 야구를 두루 하면서 ‘몸을 제대로 쓰는 법’을 배웠고, 야구에 집중하면서 야구용 기술을 더했다. 저지의 성공 비결이다.​

세상은 점점 집중화, 전문화를 강조한다. 한 우물 파는 데도 인생이 모자란 듯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 번 우물을 파기 시작하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마케팅 ‘구루’로 평가받는 세스 고딘은 ‘매몰비용 오류’를 지적한다. 무언가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면, 거기에서 손 떼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시간이나 돈을 낭비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과 돈은 이미 사라진 다음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투자를 더하고(물타기) 더 큰 손해를 볼수록, 결국 잘될 것이라 우기면서 계속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몰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선언에 매몰되면서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라는 기이한 조직이 나타나게 생겼다.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고집스럽게 바뀌고 이를 방송사 탓으로 몰아가는 일 역시 매몰비용의 오류다. 잘못 판 ‘한 우물’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 중력에서 벗어날 초속 11.2㎞의 ‘용기’가 필요하다.​

답장을 쓴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야구를 더 넓게 볼 수 있습니다. 야구 기자는 공을 좇는 이가 아니라 공을 던지고 치는 사람을 보는 이들이니까요. 그다음에 더 좋은 야구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용균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장, 경향신문,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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