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로 바꾸면 '사랑하'로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by 김대일

'바라다'가 본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중의 입에 달린 '바램'을 '바람'으로 바꾸어버린 표준어 규정. 그런 논리라면 본말이 '하다'니까 '야, 빨리 이거 하!'나 '사랑해' 대신 '사랑하'라고 해야 되는 게 아닐까. 또 '노라지다', '하야지다'는 오히려 틀리고 '노래지다', '하얘지다'는 왜 맞는 걸까. '나무라다'가 기본형이라 '나무래다'는 안 된다는데, 요즘 "쟤 좀 나무라/나무라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올해 한글날에 맞춰 한겨레신문이 토요판에 낸 커버스토리는 <표준국어대사전은 진짜 표준?>(2022.10.08.) 였고 손중선 대구교대 교수(교육학·언어학)는 그 기사와 관련해 언어의 일탈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고를 작성했는데 한겨레신문은 2022.10.22. 특집 기사(<거꾸로 가는 언어정책>)로 이를 냈다.

국어사전을 들출 적마다 정해진 틀 속에서 얌전하게 길러진 언어만이 진품인 양 나열하고선 강요하는 듯한 착각이 일곤 한다. 이왕 같은 뜻이라면 언중이 쓰기 편하고 유연하게 언어는 진화 내지 변화하기 마련이건만 그걸 굳이 틀렸다, 아니다라고 우격다짐을 벌이듯 배척하는 태도에 거부감이 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손 교수는 기고문에서 마치 유무죄를 결정하는 형사법 같은 표준어 규정을 비판하면서 본말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말을 만드는 힘(새말심=조어력)의 큰 원천이라고 밝혔다. 기고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언어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역설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어휘와 문법이 풍부해진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복잡해지는 언어는 없으며, 과하게 복잡해지려 하면 언중이 알아서 조절하게 되어 있는 게 언어다. 작금의 표준어 규정으로는 우리말을 분재盆栽로 키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마을의 수호신 같은 정자나무로 키울 수는 없다.


언어의 일탈이라… 어쩌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내 언어적 메카니즘이 모두 허상일는지 모른다. 전복적 사고!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3772.html#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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