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견딜 만하니?
세상이 아무리 편해졌기로서니 예나 이제나 직접 겪는 당사자한테 군생활이란 고달프고 더딜 수밖에 없다. 자대가 김포쪽이라고 들었다. 곧 혹한기로 접어들 텐데 건강에 특히 유의해라. 젊은 혈기라 얼음도 녹일 만하겠지만 과신했다가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늘 경계해라. 혹한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강원도 원통이란 곳에서 군생활을 한 이모부로서는 네가 여름보다 겨울을 슬기롭게 나는 지혜를 터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옛말 치고 그른 거 하나 없으니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도 예외는 아닐 게다. 건장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국방의 의무라는 둥 돼먹잖은 애국심을 들먹거리면서 경건한 척 떠들어대지만 자의도 아닌 타의로 어쨌든 집 떠나 사서 고생하는 건 사실이다. 요즘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세태에서 보면 일 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원래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밤낮없이 훈련 아니면 삽질로 시간을 좀먹는 비효율이 소중한 청춘의 한때에서 얼마나 큰 의미로 남을지 회의적이다. 허나 국방부 시계는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세상 모든 것에는 결국 끝이 보이는 법이니 지금은 제대란 말이 너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외계어처럼 들리겠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너한테도 일어날 환희의 순간일 게 분명하다. 바라건대 네 환희의 순간에 무의미하고 무소용할 것만 같은 군생활을 돌이켜보건대 앞으로 네가 펼쳐 나갈 삶의 여정에서 값진 거름이 될 그 무엇 하나쯤 건질 수만 있다면 감히 성공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나에게 묻지 말고 네가 스스로 터득해라. 그러니 보초를 서든 진지공사 삽질을 하든 오늘의 이 시간이 네 인생의 값진 순간임을 늘 명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외할머니, 네째이모 부산에 들렀을 때 네 근황을 얼핏 들었다. 자대 내부 사정으로 첫 휴가 나오질 못했다고 그러더라. 안타깝겠지만 어쩌겠니. 군대가 원래 파행적인 곳이니 감수하는 수밖에. 정기휴가 등 긴 휴가를 나와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면 부산에 들러 이모부랑 소주 한 잔 하자꾸나. 각이 딱 잡힌 팔각모사나이가 보고싶거니와 전보다 더 늠름해지고 성숙해졌을 네 면면을 목도하는 것도 이모부의 큰 즐거움일지니.
부모님께 자주 안부 연락 드려라. 그리고 건강, 건강, 또 건강해야 한다.
부산 이모부
(우리 딸 둘 빼고도 열다섯 명이 더 있는 처가집 조카들 이름을 다 외우는 내가 참 신통하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못 만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기연가미연가하는 아이들도 없지는 않지만 크게 서운하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나도 열다섯이나 되는 조카들 중에 표가 나게 유독 편애하는 녀석이 있으니 나를 소 닭 보듯 해도 피장파장이다.
올 3월 해병대로 입대했으니 7개월째다. 18개월 복무기간의 삼분지 일이 후딱 지나갔고 단풍 지는 계절을 한 번만 더 기다리다 보면 벌써 제대할 때가 된다. 작년 1월 부산의 한 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지원해 실기 시험 보러 사흘 간 우리집에 녀석이 머물렀을 때 나는 아들을 키우는 재미가 어떨지 자꾸 상상을 했다. 아기자기한 터수는 아니되 묵직한 든든함 같은 게 내 마음을 넉넉하게 감쌌다. 이모부가 이런 느낌인데 그 아비는 오죽할까. 어른 같지 않은 행상머리로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손위 동서, 즉 녀석의 아비가 난생 처음 부러워 질투가 날 지경이면 말 다 한 거다.
얼마 전에 오셨던 장모와 네째 처형 통해 녀석의 근황을 들은 게 문득 기억이 났다. 부대 내 사정이 생겨 첫 휴가가 무산됐다는 소식이었는데 녀석 성정으로 미루어 무난하게 극복했을 거이다. 녀석한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요즘은 군인도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대서 문자로 남겼다. 휴가로 오든 제대를 하고 들르든 우리집에 다시 오는 날, 녀석과 단 둘이서만 오붓하게 한 잔 마시고 싶다. 작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