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직

by 김대일

미국의 일터에서 노동자 최소 50% 이상이 '조용한 사직(Quiet Qutting)'을 실천하고 있다고 지난 9월 여론조사 갤럽은 밝혔다. '조용한 사직'은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되 추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연봉 증가나 승진, 좋은 평가, 나아가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을 바라지 않는 업무 태도를 의미하고 ​열심히 일하다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를 뜻한 '번아웃'과 다르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보다는 좀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조용한 사직'의 유행은 팬데믹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는데 마리아 코도비츠 노팅엄대학교 조직행동학 교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팬데믹 이후 직업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일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한겨레, 2022.10.25. 기사에서 인용)

역병이 돌자 사회적거리를 강제하면서 재택 근무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직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틱톡이라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지금 '조용한 사직' 중이라고 선언하는 동영상이 마구 쏟아지면서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우리나라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이미 실천 중이라고 나는 본다. 워라밸, 부캐, N잡러 따위는 '조용한 사직'의 한국 버전이나 다름없으니까.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가 맹종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 직업관은 그리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조직 속에서 안주하기 위해 아득바득거리다가도 가끔 무엇을 위해 나는 일을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회의감이 일며 사뭇 진지해지지만 바로 뒤따라 독하게 안 살면 나락으로 떨어져 인간 말종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의 파고에 뒤덮여 수면 아래로 속절없이 가라앉고 만다. 이 위기의식은 천형처럼 평생 따라다녀서 돈벌이로써 유효하다면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직업적 숙명 앞에 심신이 갈갈이 찢겨질지라도 늙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한다.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은 늦은 채로.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워라밸, 부캐, N잡러 따위 조용한 사직의 일종이면 뭐든 나는 추앙한다. 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했던(할 줄 몰랐던)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당돌하면서 현명한 세대'로 나는 그들의 모든 시도를 기꺼이 흠모하고 추앙하는 바다. 신명을 다해 조직에 충성해 승승장구해본들 남는 거라고는 고작 치킨집 열면 딱인 알량한 퇴직금 몇 푼과 기력 다 빠져 껍데기뿐인 몸뚱아리라면 과연 남는 장사인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얼마나 대단한 공명을 누리겠다고 나를 소진시키려는가. 젊은이들에게 영광을! 당신들의 조용한 사직을 전적으로 찬양하노니!

경계할 것은, 당신 혼자 편하자고 남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기적이어서는 곤란하다. 한겨레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만, 주어진 일만을 수행한다는 업무관이 개인에게 실제 도움이 될지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대부분의 직업은 동료와 협업하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세라 쿠부릭은 13일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에 "조용한 사직"이란 업무관이 과로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지, 최소한의 일만 하기 위한 적당한 핑계에 불과한지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업무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인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용한 사직이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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