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먼 부박한 내가 부쩍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무정부주의'와 '분노'이다. 말세 같은 세태와 아주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떠오른 단어에 걸맞은 학자연하는 고찰이 수반될 리 없다. 기껏해야 내 머릿속에다 두 단어를 욱여넣게 만든 두 권의 책만 기억할 뿐.
일체의 정치권력이나 공공적 강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려는 아나키즘에 묘한 매력을 느낀 건 엉뚱하게도 일본 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아이들은 학교 다닐 필요가 없고 국가가 해준 게 없으니 국민연금 따위는 못 낸다는 괴팍한 아나키스트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저/양윤옥 역, 은행나무, 2006).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의 성장소설이면서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이야기이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아나키스트 아버지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조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야."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혼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없는 거야. 돈이 없어도 모두가 콘스턴트하게 가난을 즐기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체포돼 처형 위기에 처했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전후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외교관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스테판 에셀(1917~2013)이 그의 나이 아흔두 살에 프랑스인과 모든 세계인들에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하기 위해 낸, 광고 문구와 주석을 빼면 본문이 13쪽에 불과해 책이라기보다는 격정적인 정치 팸플릿에 가까운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저/임희근 역, 돌베개, 2011).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남쪽으로 튀어!』와 『분노하라』의 공통 키워드는 자유라고 나는 본다. 일체의 강제에 분노하고 거부하며 투쟁해 쟁취해야 할 자유. 갑갑한 시대에 그래도 꼭 붙들고 있어야 할 건 그 자유를 향한 종주먹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