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끝에 신을 운동화가 없댔더니 마누라가 백화점 상품권이 든 봉투를 인심 쓰듯 선뜻 준 게 몇 달 전이다. 그 상품권이 통용되는 백화점과 같은 계열의 아울렛에 가서 마음에 드는 걸 사다 신으라는 마누라의 기마이었다. 부산 기장에 위치한 아울렛은 자가용 차로 가면 우리집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곳이다. 노는 화요일 간다 간다 마음뿐이었다가 엊그제 노는 날 아울렛 개점 시간(10:30)에 당도하려고 마침내 운전대를 잡았다.
마누라랑 같이 가면 좋기도 하면서 별로 안 내킨다. 비싼 신발은 그 값어치를 꼭 한다고 굳게 믿는 마누라를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듯 유명 메이커 매장에서 근사한 신상을 쉽게 득템할 수가 있어 좋긴 한데 무엇을 사든 본인이 납득할 만큼의 초과 예산을 감정적 마지노선으로 미리 잡아뒀다가 단 십 원이라도 오버하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까지 흘리는 나 같은 쫄보한테는 그런 호사가 두고두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과연 내가 신어도 되는 운동화인가 하는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으면서 들고 온 상자 채로 며칠씩 묵혀 두다 보면 "아끼다 똥 된다"는 마누라 핀잔에 마지못해 꺼내 신는다. 하지만 재수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댔다고 새 운동화 신고 간 날엔 마른 하늘에서 소나기 뿌려지질 않나 전철 간에서는 느닷없이 발을 밟히는 불운의 연속이니 머피의 법칙이 따로 없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같은 값이면 비싼 하나보다 저렴한 둘을 택한다는 게 운동화에만 국한하지 않는 내 소비관임을 우선 밝히면서, 부부가 오손도손 나들이 삼아 갈 수도 있는 아울렛을 굳이 나 혼자서 그것도 아침 댓바람부터 득달같이 달려간 까닭은 이렇다. 일대에서 짝자그르한 아울렛이 하루 중에 가장 한산한 때가 막 개장한 직후(몇 년 전에 거기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좀 안다)고, 혼자서 움직이면 옷, 신발이라면 환장하는 마누라와 동행할 때보다 물품 구입 전 예령 동작(이를테면 목적지 안 정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이쇼핑하기, 구미가 당기는 매장에 일단 들어가 이것저것 만져보고 신어보다가 여차여차해서 이렇고 저차저차해서 저러니 시시껄렁한 품평이나 늘어놓으면서 살듯 말듯 감질만 내다 "다른 데 한 번 둘러보자"며 아주 없던 일 만들기 따위)이 없어 쇼핑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으며, 아울렛 향하는 차 안에서 이미 마음을 갈무리한 내가 주차를 끝내자마자 곧장 점찍은 매장으로 직행해 역시 이미 점찍어 둔 내가 바라는 스타일의 운동화를 찾아 치수를 확인하고 신어본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신속하게 계산을 마치고 우리집으로 복귀하는 데 정확하게 한 시간이면 충분한 신기를 연출할 수 있어서다.
그간 애착하던 운동화는 가볍고 날렵해 보이는 '리○' 런닝화다. 유명세로는 다른 메이커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인기인 '아디○○'와 상표값 말고는 뒤쳐질 게 없다. 실제로 애용해 보니 착용감이랄지 스타일 면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근데도 아울렛의 '리○' 매장에서 파는 운동화 값은 '아디○○' 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십만 원짜리 상품권을 들고 아울렛을 찾은 나로서는 '리○'이 꿀이다. 결론은 이렇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리○' 매장엘 갔다.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발견하고 샀다. 30% 세일을 했다. 계산하려는데 점원이 다른 물품을 사면 추가로 20% 할인을 해준다고 야뤘다. 일종의 편의점 '1+1' 상품 네고인 셈이다. 옳거니, 혹시 거스름돈이 제법 남으면 허드레로 입을 추리닝 바지도 한 벌 사려고 염두에 뒀는데 잘 되얏다 싶어 한 벌 구매했더니 최종 거스름돈으로 만 원짜리 상품권 4장에 동전까지 얹어 준다. 두 켤레를 똑같은 메이커로 사자니 어째 심심해서 혹시 할인 상품이 나왔나 싶어 '아디○○' 매장엘 기웃거렸지만 제일 싼 것도 우수리로 받은 상품권에다 현금으로 만 원짜리 두어 장을 더 얹어야 살 수 있는 운동화들 뿐이라 더 지체하지 않고 다시 '리○' 매장으로 향했다. 네이비 색상을 띤 '아디○○' 운동화를 원했지만 너무 비쌌고 예산을 초과해서까지 사고 싶지는 또 않았는데 마침 '리○' 매장에서 상표만 다르고 모양, 색상은 판에 박았으되 가격은 절반밖에 안 되는 운동화를 발견했다. 뭘 더 망설이겠는가. 카운터로 가 만 원짜리 상품권 4장을 건넸더니 할인된 가격에 추가로 20%를 더 할인했다면서 현금 8천 원에다 동전 몇 닢까지 거슬러 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반찬 가게에 들러 점방에서 먹을 찬거리로 세 팩에 5천 원하는 반찬을 아울렛에서 받은 거스름돈으로 샀다.
마누라는 똑같은 메이커에다 어슷비슷한 스타일로 두 켤레나 샀다고 퉁을 놓았지만 곳간에 그득그득 쌓인 곡식을 바라보는 부자 마음인 양 나는 흐뭇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