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지켜야 할 철칙

by 김대일

- 장난으로라도 집 나가지 않기

- 장난으로라도 배우자를 때리지 않기

- 부부가 꼭 함께 잠자리 들기

이 세 가지는 개업 이래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머리 깎으러 점방을 찾는 Y형이 마누라와 각방 쓴 지 오래라는 내 말을 듣고 의아해하면서 타이르듯 꺼낸 형네 부부가 꼭 지켜야 할 철칙들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의 이미지는 위트 넘치고 유머러스하며 그런 면을 추동하는 능청함으로 세상을 유유하게 사는 성싶지만 살아온 이력을 톺아나가다 보면 형이 의외로 대단히 래디컬한 원칙주의자임을 눈치채고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원칙주의자, 그것도 근본주의적 원칙주의자라고 했을 때 풍기는, 융통성일랑 쌈 사 드신 완고함이 그러나 형에게서는 1도 보이지 않고 되레 그런 본인의 성향을 유들유들하게 비틀어대고 웃어 넘길 줄 아는 성숙함에 반해서 나는 늘 형을 동경한다.

그런 형에게서 듣는 형과 형수 사이에 죽을 때까지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신사협정은 나만 해도 22년 결혼생활 중에 울증을 못 이겨 집을 한번 나갔고, 마누라는 거실에서 나는 막내딸 방에서 따로 잔 지가 몇 해인지 기억이 안 나게 오래된 지경으로 셋 중에 이미 둘이나 어겼을 만큼 부부생활이 지속될수록 지키기가 썩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현상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건 원칙주의자인 형이어서 가능하다고 이른 결론을 내기에는 뭔가 미씸쩍다. 모르긴 몰라도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수십 년째 끈끈한 부부애를 이어가는 실질적인 원동력으로써 형수의 뒷배에 의지하는 바 크지 않나 나는 본다. 한 마디로 천생연분이라는 소리겠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는 우스개소리가 어느새 이념화되어 일상적인 파행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켜야 할 걸 쉽게 깔아뭉개다 보면 그 편하고 홀가분한 게 되레 공고했던 가족성을 야금야금 와해시키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섬뜩함은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방편으로써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철칙'으로써 그 세 가지의 당위성을 형이 재차 강조할 때 절정에 달했다.

뭣 하나 맞는 구석이라고는 없는 마누라와 내가 그럭저럭 무촌 관계를 알량하게 이어가는 건 가끔씩 렉이 걸리긴 해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는 서로에 대한 금도襟度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듯 지켜야 할 것들이 하잘것없다 하여 깔아뭉개는 빈도가 잦다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서로에 대한 아량도 끝내 다할지 모를 일이라 머리 깎는 시간이 지겨워 Y형이 툭 던진 말을 그냥 귓등으로 흘려 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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