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우리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이 시작되었다. 단지 내 엘리베이터 전체를 교체하는 대공사이다. 1990년대 후반에 조성된 해운대 좌동 신시가지에 우리 가족이 입성한 건 2003년. 그때 타고 오르내리던 엘리베이터는 층수를 표시하는 버튼판과 앙증맞은 애들이 제 집 층 번호를 누르기 쉽게 하려고 그 버튼판 아래에다 역시 앙증맞은 발판을 갖다 놓은 것, 광고 내용만 변한 부착지가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어 있을 뿐 20년 전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아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달라진 게 또 있다. 교체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근본 원인, 즉 잔고장이 많아져 엘리베이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힘이 부친 지 좀 된 건 인간의 생노병사인 양 숙명적인 성싶어 안타깝다. 1998년 입주가 시작되면서부터 30년 가까이 하루에도 수백 번 시도 때도 없이 오르내렸을 수고를 감안한다면 이쯤에서 안식을 누릴 법도 하지만 지난 세월 켜켜이 쌓인 호오의 정이 남달라 못내 아쉽고 서글프다.
세월의 더께가 비단 엘리베이터에만 쌓였을까. 부산 낙향 직후 터 잡고 지낸 지 어느덧 스무 해를 넘긴 아파트는 우리 가족의 희노애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용 무대이자 숱한 사연이 점철된 삶의 현장이다. 썩 평탄치 않았던 장년壯年 시절, 우여곡절에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그나마 꿋꿋하게 건사할 수 있었던 건 그 몸뚱아리 가서 편히 누울 보금자리가 있어서였다. 도무지 한 치 앞도 가늠할 길 없어 술에 전 혼몽의 나날이 이어졌음에도 어김없이 20층 내 집까지 안내해 주며 다음을 꼭 기약하라고 위로해주는 듯한 엘리베이터가 있어서였다. 철 따라 변하는 자태를 눈요기 삼으려고 들끓는 인파들로 고통스러워도 고즈넉한 때를 여투어 생채기 난 영혼을 품어 주던 달맞이언덕길과 옥색빛 청사포 앞바다에서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나는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빌자면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는 소박한 희망이요 후회하지 않을 여생을 살기 위한 건전한 방도 모색이었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배경은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정령으로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돈 같지 않게 억억 대며 하루가 멀다하고 등락하는 부동산 시세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나는 진심이다.
바램이라면 이 곳에서 주욱 살고 싶고 죽고 싶다. 허나 내 가족들은 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목말라하지. 그들의 욕구는 언젠가는 충족될 테고 그건 내 정령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바일 테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지만 이기적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새 엘리베이터로 교체하는 경사스러운 이때 나는 왜 이리도 복잡다단한지 원.
신문지국에 연락해둬야겠다.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우편함에 신문을 넣어 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