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욕망하는 법

by 김대일

그제부터 시작된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에 관해서 어제 같잖은 소회를 밝히긴 했지만, 뜯어내 새 것으로 바꾸려고 한 달 가까이 법석을 떠느니 있는 거 잘 고쳐 가며 오래오래 쓰자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조성된 지 30년이 다 돼 가 지역의 건물이나 제반 시설이 노후화되어 부동산 가치 하락을 우려하던 차에 12만 인구를 수용한 아파트들이 일제히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해운대구 좌동 신시가지('그린시티'라는 돼먹잖은 영어 명칭으로 바뀌었지만)의 집단적 움직임에 나는 반대한다. 관광객 유치니 지역경제 활성화란 미명 하에 해운대 바닷가에 고층 건물이 그만 들어섰으면 좋겠고, 경제 유발효과가 수십 조이고 고용창출 효과가 수십 만이라고 선전해대지만 개최하자면 또 땅을 파고 건물을 세워야 하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세웠던 것들은 또 어떻게 활용할 건지 말만 번드르르하지 실속은 미심쩍어 부산에 사는 시민인 나한테 무슨 이득인지 당최 체감할 수 없는 2030 세계박람회 유치도 전적으로 반대한다.

내가 개발이니 발전이니 혁신이니 하는 강박적인 데마고기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냅두는 '무위'에 경도된 연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탈성장주의'든 '생태지향주의'든 무슨 주의를 갖다 붙이든 간에 우리 주변이, 우리 지역이, 우리 자연이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으로 잠식당하는 꼴을 더는 두고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과격주의자마냥 분노를 일탈로 표출할 배포도 없다. 전에도 밝혔지만 나는 쫄보다. 하여 나대로 스스로를 의식화해 근본주의자적 관점으로 응시하며 가당치도 않는 작태에 분연히 힐난의 침을 뱉어 그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내 소심한 반항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마침 이런 내 생각과 맥이 닿는 칼럼을 읽었고 논리정연한 교수의 글을 통해 보다 설득력있게 내 생각이 전달될 듯싶어 여기에다 옮긴다.


(전략)

자동차는 놀라운 발명품이다. 하지만 차가 늘자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이 늘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몰고 온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차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전기차와 수소차를 만들고, 길을 넓히고 새로 만든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한다. 이렇게 문제의 증상만 기술로 대응하면, 차는 계속 늘고 이전에 없던 문제도 생겨난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필요한 만큼 적기에 줄일 수 없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시민 5만명은 도심 내 일부 지역에서 원칙적으로 개인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교통 부문 탄소배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로 ‘주행 방식’을 바꿀 게 아니라 ‘주행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이고 직관적이며, 상식적이고 효과적이다. 차량이 줄면 교통사고가 줄고 녹지와 공공장소는 늘 것이다. 좋은 삶으로 가는 첩경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편리나 매력, 무엇보다 경제성장의 당위가 상식을 압도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일지 모르나 전체로는 비합리적이고 파멸적인 모순에 갇혔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우리 삶이 평온할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갇힌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기술이 몰고 오는 위기, 기술로써 극복하라!” 요즘 어디선가 본 광고 문안이다. 멋지게 보일지는 몰라도, 새로운 기술을 말하기 전에 위기를 몰고 온 원인, 곧 그 기술을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나. 그 기술도 애초에는 필요하다고 개발했을 텐데, 그렇게 생겨난 위기를 극복하려고 개발한 새 기술이 또 다른, 더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러면 또 다른 기술로 극복하나?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근원은 제쳐두고 증상만 해결해줄 기술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기술로 한계를 늘릴 순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기술로 한계를 밀어낼수록 삶은 기술로 재단되고 자율은 제거된다. 지난달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편리하고 자유롭기 짝이 없는 듯한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하고 매여있는지 드러났다. 우리의 “자유는 예속”이었다. 적절한 필요는 충족되어야 마땅하지만, 산업경제의 소비문화는 언제나 ‘더 많이’를 주장하며 우리를 옭아맨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언제 멈출지 아는 일이다. 우리가 부의 불평등 증대와 삶의 토대인 자연의 잠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욕망은 줄이고 다르게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계 안에 기꺼이 머물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조현철 서강대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 <조현철의 나락 한 알- 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때>, 경향신문, 2022.11.07.)

작가의 이전글엘리베이터 교체에 즈음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