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축인 손님은 머리를 다 깎고 계산할 때 "손님 좀 늘었나요?" 수줍게 물었다. 계속 노력 중이라고 대답하자 "개금 롯데에서 왔는데요"라고 사는 데를 밝혔다. 통상 자기 집이 어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내는 건 먼 데 살지만 일부러 이 점방까지 머리를 깎으러 왕림한다는 생색의 변주이지만 이 손님의 경우는 좀 달랐다. "미장원도 가 보고 근처 이발소도 들러 봤지만 사장님처럼 신경 써서 깎아 주는 데가 없"다고 덧붙이는 걸로 봐서는 자기가 계속 드나들 수 있게 내 점방이 부디 안 망하고 건승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그야말로 '찐단골'의 애원임에 분명하다. 자분자분 진심을 전하는 이런 손님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나 커트와 흑갈색 염색을 주문한 손님이 "오픈한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묻자 그가 내 점방은 처음이라는 걸 직감했다. 염색약을 바르고 20분 가량 뜸 들이는 사이 대뜸 "진해 용원에 있는 부부가 운영하는 커트점은 손님으로 미어터지던데 거기 가서 장사하는 법을 배워 보라"고 훈수를 둘 때 살짝 빈정이 상했다. 손님들로 인산인해라 남자 사장은 커트하는 데 3분도 채 안 걸린다고 그 점방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것도 모자라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꼼꼼하게 깎아서야…"하고 말꼬리를 감추는 게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수지나 맞을지 모르겠다'로 들려 영 탐탁잖았다. 걱정도 팔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부친도 이 업에 종사하신 지 60년이 넘고 매일 단골로 문전성시인데다 용원 사장님 못지않게 빨리 커트해 내기로 유명하지만 내가 점방을 차릴 무렵 신신당부하셨던 말씀이 '나처럼 깎다간 너한테 붙을 손님 별로 없다' 였다며 정성이 우선"이라고 아퀴를 지음으로써 설령 진해 용원에 금은보화를 묻어놓은 데를 안다고 꼬드긴들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내 뜻을 에둘러 전했건만 귀담아듣는 시늉조차 안 하는 걸로 봐서는 이왕 뱉은 훈수질 끝을 보겠다는 심산인 게 분명했다.
부산도 아닌 진해 용원을 자꾸 들먹이길래 어디 사냐고 물었더니 "가야 반도보라"라는 답이 돌아왔고 "일하는 데가 녹산공단이어서 <터프 가이>(입이 닳도록 칭송해 마지않는 진해 용원 점방 상호)를 자주 간다"고 했다. 녹산공단은 부산 명지동과 진해 용원동 일대에 설립된 산업 단지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까.
똑같이 사는 데를 밝혔어도 이를 받아들이는 온도차는 크다. 내 점방에서 썩 가깝지 않은 데 살기로야 매일반이지만 누구는 누추한 내 점방까지 찾아 줘서 황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누구는 입이 보살이라는 군던지런 뒷담화의 원인 제공자로 낙인 찍혔으니 말이다. 오늘의 교훈이 뭐냐고?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랬다고 듣는 상대가 어떤 기분일지 미리 생각 좀 하고 내뱉더라도 뱉자, 뭐 그런 거?
덧붙이는 말: 부친 점방은 '가야 반도보라' 코 앞이다. 부친인 줄 당연히 모르는 그 양반 거길 간 적 있었지만 '1급 국가 자격 소지자'라고 으스대는 점방 주인이 영 맘에 안 들었다며 종합험담세트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한테 거푸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