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이야기

by 김대일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연재한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시리즈 중 한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나누는 섹스 횟수는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이라고 한다. 물론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평균값은 다르겠지만.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할 때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우리가 평생 섹스로 보내는 시간은 약 1,290시간, 날짜로 따지면 53.75일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두 달 가까이를 섹스를 하며 보낸다.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중 <'성과학'과 만족도 연구>, 한겨레신문, 2016.11.26.)


섹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결혼한 당신은 배우자와 최근 석 달 사이에 섹스를 몇 번 했나? 석 달은커녕 마지막 합방 기억이 가물가물한 내가 물어볼 입장은 아니지만. 한 이 십 년 넘게 살 부비며 살다 보면 옷깃만 스쳐도 는실난실 춘정이 이는 따위 야릇함은 이젠 별로 없다. 드물게 두 아이가 동시에 집을 비우는 절호의 적기에도 반짝 입맛만 다시다가 귀찮아져서 그만 각방 들어가 자고 만다.

헌데 그 성욕이라는 게 참으로 요사스러워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지만 욕실에서 마누라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아랫도리가 느닷없이 마구 쏠리는, 소설의 표현을 빌자면 '갈래기(발정기) 도진 강아지'마냥 주체하지 못할 때가 또 있다. 그러면 '오늘 밤 어때?'란 말은 차마 못 하겠고 마누라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부부 합환의 기회만 엿본다. 허나 섹스가 내가 원한다고 너도 원하는 건 꼭 아니라서 남의 속도 몰라주고 방문을 닫아 버리는 마누라 등판에다 대고 함께 산 날이 몇 갠데 꼭 말로 해야 알아듣느냐고 씨부렁거리다 만다.(대놓고는 못 하지. 목숨이 몇 개면 모를까)

주낙질하러 배를 띄운 오씨는 심사가 뒤틀려 있다. 뭔가 가득 차서 해소해야 할 필요가 충분한데 눈치껏 고쟁이 한 번 내려주지 않은 아내 세포댁이 야속해서다. 세포댁은 세포댁대로 고되다. 사업마다 털어먹는 이혼한 아들이 두 아이 슬쩍 내려놓고 또 일 벌이러 나가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애 농사 짓느라 뜬금없이 쎄가 빠져서다.

돼지 비계 쪼가리 하나 없고 날 추운데 멀국도 안 챙겨 왔냐는 둥 밥 투정을 부리지만 실은 서방 홀대하는 세포댁이 너무 서운한 오씨. 죽은 시엄씨를 다시 모시는 게 낫지 죙일 애새끼들 치다꺼리에 정신도 하나 없고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서방이라고 뭐하나 거들 생각은 안 하고 그것만 안 준다고 떼를 쓰는 게 서운한 세포댁.

마음이 꼬이니 일도 덩달아 꼬이는지 갑자기 배 엔진이 꺼져 버린다. 프로펠러에 적잖은 밧줄이 단단히 감겼기 때문이다. 낫 감아 묶은 대나무를 집어넣어 낫질을 해보지만 되레 낫 모가지가 쑥 빠져 버렸다. 되는 일 없이 심사만 꼬일 대로 꼬인 오씨는 밧줄 풀러 바닷물로 뛰어든다. 고투 끝에 밧줄은 풀었지만 오씨가 정신을 잃고 그대로 가라앉을 찰나, 세포댁이 갈고리로 걸어 올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원문 그대로 옮긴다. 선정적이면서 달콤한 대단원, 내가 최애하는 대목이다.


눈 떠보니 홀랑 벗겨져 있는데 똑같이 벗어 알몸인 세포댁이 언 몸을 꼭 껴안고 있는 것 아닌가. 가슴께를 누르느라 양 젖이 옆으로 잔뜩 퍼져 있고 아랫도리는 행여 물 샐 틈 있을세라 촘촘히 밀착한 상태이며 그 위로 적잖은 엉덩이 두 개가 달처럼 포실하게 떠 있는데 두 팔로 목과 머리를 껴안고 그렇게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이다. 온기는 세포댁에게서 온 거였고 그만큼 그녀는 떨고 있었다.

"정신 좀 드요?"

"이 사람아…."

그는 입이 차마 안 떨어졌다. 굳이 말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 앞뒤 볼 것 없이 군용모포 끌어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아내를 꼭 껴안는다. 석 달 만이다.(한창훈,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 중 <주유남해舟流南海>,한겨레출판)


지하철 안에서 스물 대여섯 페이지에 불과한 이 짧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끈불끈 솟는 욕정을 참느라 혼났다. 장담하건대 그 어떤 빨간책들보다 야하고 재밌다. 여세를 몰아 오늘 밤은 무조건 이 한 몸 불태우리라 다짐했건만…마누라 처갓집 간 걸 깜박했다. 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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