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권기덕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
운동할 땐 고릴라라면
춤추고 싶을 땐 캥거루라면
대화가 필요할 땐 앵무새라면
수영하고 싶을 땐 물개라면
협동할 땐 개미라면
여행하고 싶을 땐 제비라면
깜깜한 길 가야 할 땐 올빼미라면
친구 도와주고 싶을 땐 악어새라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라면이 되고 싶다
(지난 주 일요일 '김밥' 시를 올렸으니 이번 주는 당연히 '라면'이다. 나는 지난 주말처럼 오늘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바늘에 실 가듯 컵라면 하나를 곁에다 두고 면발을 건져 먹거나 국물 대용으로 마신다. 라면이 제일 맛있었을 때가 언제였는가 당신은? 나는 군생활할 때와 서울서 사회초년생 시절 먹었던 라면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다.
일직 근무로 밤을 꼬박 샐 때 야간 불침번은 진작에 끝났지만 출출함에 못 이겨 좀처럼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소대원들이 끓인 뽀글이를 한 봉 얻어서 먹고 있노라면 변변한 건건이 하나 없이 그냥 꿀떡 삼키는 라면과 국물로도 내 허기진 몸과 마음은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탕진한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예 관두지 않는 한 떠나지 못하는 서울이라는 쓸쓸하고 막막한 도시에서 그나마 위안 삼을 거리라곤 회사 동기들과 근처 회전초밥 점방에서 가지는 술자리였다. 젊은 객기에 '딱 한 잔만'이 '인사불성'으로 이어지는 일이 흔해서 아침 출근길은 늘 숙취로 고생길이었지만 회사 빌딩 지하 분식집에서 먹던 아침 식사 겸 해장 라면 맛은 군생활 뽀글이 라면만큼이나 내 몸과 마음을 달래줬다.
그때 그 라면 맛을 어찌 잊겠냐마는 다시 돌아가 그때 라면을 먹을 거냐고 묻는다면 묻는 이의 멱살을 잡고 실컷 패 버릴 것이다. 그냥 내 점방에서 먹는 김밥과 컵라면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