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은퇴 생활을 영위하는 손님들을 가끔 본다. 그들은 그들 입으로 행복하다고 거리낌없이 자랑질을 해대는데 아니꼽기보다는 그런 태연함이 보기 좋다. 어쨌든 늙어갈수록 당당해지는 건 바람직하니까.
40년을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면서 TV에도 뻔질나게 나왔었다고 뻐기는, 나이가 일흔넷이라고 밝힌 노인은 낮술로 불콰한 주기가 도는 얼굴이긴 해도 헌칠한 키대와 잘생긴 풍채가 인상적이었다. 매달 25일이면 통장에 찍혀 나오는 275만 원 공무원연금을 노부부가 사이좋게 절반씩 나눠 가지되 그 돈으로 각자가 무엇에 얼마를 쓰건 일절 딴지 걸지 않기로 단단히 약조를 했다나. 공과금은 오롯이 자기 몫인데다 동네 노인회 총무를 맡아 무리를 이끌고 주야장천 유흥을 즐기자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라면서 40년 인생을 바쳐 받는 연금액이 군인, 선생 연금보다 적어서야 어디 공무원짓 해먹겠냐면서 이 나라 공무원을 홀대하는 연금 정책을 질타하지만 내 눈에는 투정으로밖에 안 보였다.
전직 형사임을 밝힌 마당에 기선 제압용인지 허세 작렬용인지 듣기 껄끄러운 욕설을 대화 사이사이에 욱여넣는 품이 첫 방문임에도 대화 상대로 내가 만만해서일 거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더군다나 생각보다 훨씬 말끔하게 머리를 다듬어줘서 더 기분이 좋았는지 이끄는 노인회 무리를 모다 나한테 끌고 오겠다며 호언장담을 해댔다. 나야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올시다"라면서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의 뜻을 곡진히 표했지만 와야 오는 거이니 두고 볼 일이다.
매달 25일 275만 원이 따박따박 통장에 꽂힌다면 나는 무얼 하면서 여생을 보낼지 염색을 다 바른 뒤 잠시 틈이 날 때 상상해봤다.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전직 형사처럼 허구헌 날 친구들이랑 술도가로만 싸돌아다니면서 문뱃내 풀풀 풍기는 일상도 썩 나쁘지 않을 성싶다. 술도 마음이 편해야 술술 들어가고 맛이 나는 법이니까.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형사 출신 노인이 좀 많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