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맘때 남편이 커트하고 받은 두피마사지가 시원해 보였는지 따라온 아내도 덩달아 두피마사지를 받은 부부가 재차 점방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내가 먼저 두피마사지를 받겠다고 냉큼 의자부터 점령했다. 웃으면 인자한 옆집 아저씨 상이건만 굳은 얼굴에 말수까지 적은 남편을 대신해 점방 주인과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양 스스럼없이 너나들이하는 아내는 대조를 이루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뤘다. 겉으로만 봐서는 두어 걸음 앞장서서 걷는 남편 뒤를 아내가 졸졸 뒤따르는 전형적인 구시대적 부부상을 떠올릴 법하지만 그 부부에게는 반전이 있었다. 살짝 츤데레 캐릭터가 엿보이는 남편임에도 아내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눌 때는 친오빠처럼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다. 또 그런 남편에게 깍듯하게 경어를 쓰며 응대하는 아내의 티는 하도 자연스러워 보여 어제오늘 급조한 게 아님이 분명했다. 일상성을 확보한 부부의 모습은 그래서 신선했다. 친구같은 부부사이는 드라마나 소설책에나 등장하는 표현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직관하고 보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일흔을 훌쩍 넘겼는데도 아웅다웅하는 부모님이시다. 표현이 잘못돼 다시 고쳐 쓰겠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우위에 있는 부친의 일방적인 다그침, 그런 부친의 서슬에 늘 마음 졸이고 사는 모친, 틀어지면 두 노친네 사이에서 무마하는 데 애달파하다 고래 싸움으로 등이 터진 새우 꼴이 되어 버린 나. 내 머릿속에 각인된 부부상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평생 보고 배운 게 먹고사니즘에 찌든 스트레스를 배우자한테 악다구니질해서 푸는 거였으니 부부사이에 운우지정은 몰라도 부부지정은 딴 세상 남 일이거나 설령 그러는 척 유난을 떨지언정 그조차 가증스런 위선일 뿐이라는 회의적 입장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어갈수록 마누라와 데면데면해지고 차라리 말을 안 섞는 게 피차 유익하다고 말문을 닫아 거는 내 모습이 다른 건 다 유해졌음에도 유독 모친한테 으르렁대는 습벽만은 전혀 바뀌지 않는 부친과 드러난 양상만 다르지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그 부부가 인상적이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