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몸이 많이 불편하다. 목 부위가 자꾸 마치고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해 주지 않으면 뻣뻣하게 굳기 일쑤다. 그 때문인지 자꾸 어지럽고 두통이 인다. 혈압약 타러 들른 김에 동네 주치의에게 증상을 말했더니 목 통증으로 인해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럴 수도 있대서 좀 걱정이다. 뇌혈관 질환 가족력이 늘 나를 긴장시켜서다.
휴무일 다음날은 오전 내내 손님이 통 안 들었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일찍 점심이나 막 까먹으려는데 마수걸이 손님이 들어왔다. 젊은 사낸데 자주 보던 얼굴은 아니었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서 안 빼길래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지장 없잖아요?" 시건방진 대꾸였다. 편한 대로 하랬지만 커트보를 두르는 와중에도 뭐 그리 대단한 걸 보는지 이어폰을 낀 채로 스마트폰 화면에 정신이 팔려 있는 행상머리가 깎새를 배려하는 태도는 아니라서 영 마뜩잖았다.
손님이 주문한 스타일에 맞게 작업을 하는 중에 자꾸 핑핑 돌았다. 현기증이 도진 게다. 설상가상 목까지 아파와서 일하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젊은 사내의 옆머리는 좀 특이했다. 옆머리 상단은 기른 채로 냅두고 하단을 바싹 치켜올린 투블럭 자국이 역력했다. 이런 머리에 대처하는 방법을 진작에 터득한 나는 제법 도가 텄다. 그러니 작업에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씨, 옆머리가 왜 이리 떠요?' 시비조로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살짝 뜨긴 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아서 개의치 않았던 바인데 별일 아닌 걸 상대편이 별일 취급하니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원하는 대로 깎는 중인데 왜 그러시죠?" 했더니 앉은 자세에서 몸을 더 확 주저앉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질 않나 비아냥스레 곁눈질을 해대 내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했다.
대거리를 하고들면 할 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안 하고 싶었다. 아니 못 했다. 머리는 핑핑 돌고 목은 띠끔띠끔 결려서 요금 안 받아도 좋으니 얼른 이 진상을 내보내고 싶단 생각밖엔 안 들었으니까. 뜨는 옆머리를 가위로 손질하면서 가라앉히는 작업을 이어가던 중에, "머리 감고 함 볼께요"라면서 커트보를 휙 잡아채려고 하길래 말없이 걷어줬다. 뒤통수나 한 대 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머리 감고 나서 두고보자며 일단 참았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는 젊은 사내 안색을 살폈다.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였다. 머리가 뜨는 이유가 있다. 상단은 길고 하단이 극단적으로 짧은 투블럭 자국이 난 옆머리를 일단 깎으면 그 불균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머리가 뜨게 되어 있다. 상단 머리를 하단 머리와 충분히 어울리게 깎았다면 머리를 감아 머리숱의 숨이 죽으면서 뜬 머리는 스윽 가라앉게 된다. 경험에 기반한 사실이다. 옆머리가 뜨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개의치 않았던 까닭은 머리 감은 뒤를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깎을 만큼 깎았는데 머리가 뜬다? 누구보다 자기 머리 특성을 잘 아는 손님이라면 군소리 않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정 눈에 거슬리거나 미심쩍어하는 눈치면 내가 나서서 성심껏 대답을 해주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머리 아프고 목도 결려서 몸 가누기조차 버거운 상태에서는 작정하고 시비조인 진상이라면 괘씸해서라도 호의를 베풀 까닭이 없다.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겸연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뻔뻔할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덤벼들 것처럼 하던 이전 기세는 어디 가고 없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살짝만 골라 달라고는 하는데 '머리 감기 전 스타일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칠 테니'란 뉘앙스가 풍겨 같잖았다. 젊은 사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의 반격이 시작됐다. 호락호락 물러나기에는 내 자존심의 스크래치가 너무 크게 나서였다. 하여 "내 말 좀 들어봐요. 예전에 투블럭 했죠?(투블럭 한 적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투블럭 특성상 하단보다 극단적으로 긴 상단을 고르다 보면 손님 머리처럼 뜨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하지만 머리를 감으면 원상태로 돌아오곤 하죠."라고 내 할 말 했다. 허나 정작 '네가 나를 얼마나 물로 봤으면 이리 진상을 부리는 게냐. 5천 원짜리 커트한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면 다시는 내 점방에 얼씬도 마라'하고 쏘아붙이는 게 본론이었건만 더 쏘아붙인들 성가시기만 할 성싶어 관뒀다.
마수걸이부터 봉변을 당했더니 일진이 사나웠다. 매상은 빠지고 몸은 부치고, 하여튼 고달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