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남다른 의미인 글

by 김대일

(며칠 전 한동안 뜸했던 군 시절 고참 형한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는데 글 한 자락 들이밀면서 '그대가 쓴 건가?' 물어왔다. 작년 3월께 쓴 내 글이 맞았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부평초마냥 둥둥 떠다니던 걸 뭣 땀시 건졌는지 궁금하면서 그런 형이 한편으로 참 용했다.

2017년 1월 24일에 문을 연 내 블로그에서 그 글은 조회수로만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조회수 운운하지만 한산하기 짝이 없는 내 블로그에서 1천만이 아닌 1천에 육박하는 조회수(947)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 글에 내가 남다른 애정을 느끼긴 한다. 조회수가 기특해서 그런 건 아니고, 과연 어떻게 써야 나만의 색깔이 두드러진 글투가 나올지 어쭙잖은 고민을 하면서 썼던 최초의 글이라서 그렇다. 꼬집어서 무엇이라 정의내리지는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맴 도는 그 스타일이란 놈을 형상화시키려고 처음으로 깝죽댔던 시도. 그래서 이 글의 의미가 남다르다.

말 나온 김에 여기다가 다시 옮기려는데, 살짝 고쳤다. 거슬리는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그랬다. 이전글과 견줘 형편없지만 않으면 된다.)

<here's looking at you, kid>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고충을 곧잘 듣는다. 단골 손님을 바로 알아채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친을 점방에 드나들면서 심심찮게 본다. 남의 머리 깎아 주는 점방이건 남의 배를 채워 주는 점방이건 정기적으로 서비스나 재화를 팔아주고 가는 단골이 뜨내기보다 우선이다. 그런 단골을 더 친밀하고 깍듯하게 대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가 행여 불편해할지 모를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미연에 제거하고 차단하는 게 주인장 행동강령 최우선 순위임이 분명하거늘 감히 하늘 같은 단골을 알아보지 못한 결례를 범했다면 점방을 꾸릴 자격이 사실 없다.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역병의 시대를 핑곗거리로 들먹일 순 있어도 어째 궁색하다( 때론 호된 질책이 보약보다 용할 수 있으니 부친께선 노여워 마시길).

그런 의미에서 나는, 꼭 나만이 가진 비상한 능력이 아니라 해도, 마스크 위로 굴러가는 두 눈동자만 보고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다. 물론 생면부지인 사이라면 그가 누군지 절대 알 리 없지만 한두번 말 붙여 안면이 튼 사이라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매달 혈압약을 타러 들르는 동네병원의 원장과 간호사, 약국 약사를 우리 동네가 아닌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다손 바로 그들인 줄 알아채고 내 혈압 수치를 화제로 거리에서 얘기 나눌 수 있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싸맨데다 비록 한 달의 한 번밖에 그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미 그들의 덩치, 머리 스타일, 걸음걸이를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상적인 겉모습 한두 가지로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복기할 수 있다는 소리겠다. 꽤 영특하지?

내 비상함이 드러나는 경우는 더 있다.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쳐 상대의 두 눈동자를 응시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가 맛은 참 있는데 소불고기 만 원어치 무게를 달아 만 오백 원이 나오면 오백 원을 더 붙여 기어이 만 천 원으로 팔고야 마는 덤이 야박한 우리 아파트 상가 정육점 주인이고, 그녀가 순대 섞어 달랬더니 허파고 간이고 각각 딱 세 조각씩만 깍둑썰어 그걸 다시 반으로 써는 인색의 신기를 시전하는 역시 우리 상가 떡볶이집 여주인임을 금세 알아챈다. 알아챌 뿐만 아니라 '내가 당신한테 그간 섭섭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라는 무언의 레이저 광선을 쏘면 그토록 형형하던 그(녀)의 광채가 잦아들더니 회개하듯 고개를 숙이는 통쾌한 장면도 심심찮게 연출된다. 이후로도 오백 원어치 덤은커녕 오백 원을 더 보태 계산하는 게 다반사가 되고 포장이 터질 것 같다며 기왕에 썰어 놓은 순대 꽁다리 두 쪽을 덜어내도 끽소리 제대로 못하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 중 「그대 눈동자에 건배」에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잘 사람을 알아채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야 알 만한 사람만 알아채는 잔재주를 부릴 뿐이지만 미아타리(불시 발견)는 그 잔재주가 수사 기법으로 도입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 도쿄 경시청 미아타리 수사원들은 수배자 수백 명의 인상착의를 암기한다. 주목하는 부분은 수배자들의 눈매란다. 세월이 흐르거나 성형수술을 해도 얼굴의 골격이나 눈, 코 라인 특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나. 번화가나 전철역 앞에 무작정 서서 기억력과 두 눈만으로 지명수배자를 찾아낸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라지만 성과가 꽤 있나 보더라.

우치무라는 동창인 야나기다의 초대에 응해 나간 미팅 자리에서 모델치고 키는 작지만 눈가의 화장이 인상적인 모모카를 알게 된다. 검은 눈동자에 갈색이 서리고 눈동자가 한층 크게 보이는 컬러 콘택트 렌즈를 낀 모모카. 각자의 관심사가 에니메이션 시청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이어가지만 이상하게도 모모카는 통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린다. 집에 데려다 준대도 사양하고 고향 얘기를 물어보면 화제를 바꾸며 적극적으로 자기를 방어했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우치무라가 하루는 무조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서 모모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모모카는 자기를 에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착각한 것 같다면서 그 환상을 깨게 해준답시고 콘택트 렌즈를 뺀다. '그래도 날 사랑해?' 묻듯. 렌즈를 벗은 모모카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우치무라는,

- 너는… 내가 오랫동안 찾던 사람이야.(『그대 눈동자에 건배』(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7)에서)

곧바로 그녀를 체포한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 중 하나란다. 최근에 나는 그 대사에 꼭 맞는, 대사 그대로를 말하고(그것도 원어로) 대사 그대로를 행동에 옮긴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여러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계속 돌려봤다(유투브로 그 장면만. 고로 드라마를 다 본 게 아니니 드라마 전체 내용을 알 리 없다). 옛날 영화 대사를 이렇듯 절묘하게 활용한 사례를 나로서는 여태껏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람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제목이 <멜로가 체질>이랬던가. 세 여주인공 중 은정(전여빈 분)은 옛 애인의 허깨비하고 먹고 놀고 얘기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처자다. 그 사연이 뭔지는 계속 말하건대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니 설명은 생략하고, 하여튼 잘 나가는 CF감독이면서 은정처럼 전 재산을 기부해 기부계의 양대 산맥, 기부계의 두 또라이 중 한 사람이면서 은정과는 톰과 제리마냥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수(손석구 분). 그 둘이 술자리를 가지는 장면이 내가 말하고픈 내 마음의 멱살을 잡고 뒤흔든 문제의 장면이 되겠다. 상수는 여태 말하지 않았던 서로의 얘기나 하자고 제안한다. 그 대사가 나간 뒤 드라마 수록곡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만 들리고 디졸브.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얘기를 하는 은정이나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상수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은정이 옛 애인의 허깨비와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놓고 상수는 이해하려 드는 것 같았다. 배경음악이 그치고 장면이 전환되자 상수는 은정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다. 그리고 잔을 들면서 말한다.

- here's looking at you, kid.

의아해하는 은정을 보면서 덧붙인다.

- 카사블랑카에 나온 대사야. 우리나라에서 참 멋지게 번역됐지. 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잔을 드는 상수. 맞춰 줘야 하니까 은정도 짠이나 하려고 잔을 든다. 상수는 그 잔을 지나쳐 은정의 눈에 잔을 가져다 댄다.

수배자의 인상착의(특히 눈매)를 기억해뒀다가 체포하는 우치무라나 무엇을 보건 이해하겠노라며 은정의 눈동자에 건배를 하는 상수나 두 눈을 통해 상대를 알아챘다. 다른 데는 몰라도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어 버린 시대다. 가끔은 마스크 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인중 아래를 훔쳐 보고 싶은 욕구가 일곤 하는데 빼꼼히 나를 쳐다보는 사람의 두 눈만으로 그 사람의 얼굴, 목소리, 그 성격까지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도 마스크를 벗은 맨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두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는 기쁨보다야 나을 리 없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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