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이라는 기자는 현재 한겨레신문사 문화부에서 근무 중이다. 한 인터넷서점에서는 그를 두고 '사고의 관성을 흔들고 두뇌의 신경을 자극하는 인문학 책을 읽고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작가로 소개했다(예스24). 십수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를 아직 제대로 접해 보진 못했지만 그의 이름을 내건 칼럼만으로도 그의 도저한 인문학적 식견을 엿볼 수가 있다.
엊그제 그의 칼럼(<고명섭의 카이로스-정치의 악순환을 막을 길은 없는가>, 한겨레, 2022.11.30.)은 그 내용이 무척 시의적절해 혼자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하여 주요 대목을 발췌해 소개할까 한다.
헤르도토스, 투키디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역사가로 꼽히는 폴리비오스는 헤르도토스의 <역사>(historiai)와 동일한 제목으로 쓴 역사서에서 정치사상가의 눈으로 왜 그리스는 몰락하고 로마는 흥기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가는데, 폴리비오스가가 발견한 것이 로마의 독특한 혼합정체였다. 로마 공화정은 군주정에 해당하는 집정관 제도와 귀족정에 해당하는 원로원 제도, 그리고 민주정에 해당하는 호민관 제도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견제와 균형의 혼합정체가 로마 공화정의 안정과 성공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은 폴리비오스가 탐문 과정에서 '정체순환 법칙'을 확립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가 하나로 머물러 있지 않고 순환한다는 법칙이다. 자연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정치체제도 나고 자라 시들어간다. 흔히 서양의 역사관을 직선사관이라고 하는데, 이 사관이 성립한 것은 기독교 종말론이 널리 퍼진 뒤의 일이다. 그 전에는 역사가 끊임없이 원을 그린다는 순환사관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 순환을 정치영역에서 법칙으로 세운 사람이 폴리비우스였다.
폴리비우스 이전에 정체순환론과 유사한 정체변동론을 정식화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4권에서 올바른 정치체제로 군주정과 귀족정과 온건 민주정을 꼽았다. 이 세 정체는 통치자가 일인이냐 소수냐 다수냐 차이는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군주정 곧 바실레이아(basileia)는 군주가 왕도를 따라 다스리는 나라이고, 귀족정 곧 아리스토크라티아(aristokratia)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 곧 현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다. 또 온건 민주정,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테이아(politeia)라고 부른 정체는 민중이 지배하되, 현인들과 함께 법률과 정의에 따라 다스리는 나라다. 그러나 이런 정체들은 타락하기 십상인데, 군주정이 타락하면 최악의 정체인 폭군정이 되고 귀족정이 타락하면 과두정이 되며 온건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 민주정’이 된다. 이 타락한 세 정체는 모두 공익을 팽개치고 사익을 탐하다가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폴리비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체변동론을 이어받아 이 정체들이 역사적으로 순환한다는 정체순환론으로 변형했다. 최초의 정체는 원시 전제정(monarchia)이다. 동물세계에서 볼 수 있듯이 무리 가운데 가장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 원시 전제정 아래서 선악과 정의의 관념이 서면, 신민의 동의를 얻어 법률에 따라 통치하는 군주정이 성립한다. 군주정은 후대에 가면 세습군주가 선대의 통치를 잊고 폭력과 공포로 다스리는 폭군정이 된다. 그러면 폭정을 견디지 못한 소수가 다수의 지지를 받아 폭군정을 무너뜨리고 귀족정을 세운다. 그러나 귀족정도 타락을 면하지 못하고 과두정으로 전락하고, 군주도 귀족도 모두 거부하는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해 민주정을 세운다.
그러나 이 민주정도 선동가들이 날뛰고 법치가 무너짐으로써 중우정(ochlokratia)으로 떨어지고, 무질서가 나라를 휩쓸면 다시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 정치체제는 이렇게 순환을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이 생성과 몰락을 반복하는 정체의 순환을 막을 방도는 없을까? 폴리비오스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 혼합정체다.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의 장점을 살려 단일한 정체로 통합하면, 이 세 힘 사이 긴장이 국가를 지속해서 떠받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 폴리스들이 대개 단일 정체를 고수하다가 몰락에 이른 데 반해 로마 공화정은 혼합정체로 힘을 키워 지중해 패권을 쥐었다고 보았다.
폴리비오스의 이런 생각을 1600년 뒤에 다시 살려낸 사람이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 제2장에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자기 생각으로 펼쳐 놓았다. 정치체제의 역사는 군주정에서 폭군정으로, 폭군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 이어진다.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인들의 통치가 부유한 소수 특권층의 지배로 전락하면, 다시 말해 귀족정이 과두정으로 떨어지면, 성난 민중이 이 타락한 정체를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세운다. 그러나 민주정도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고 ‘공적 권위’와 ‘타인 존중’이 사라지면 결국 ‘무정부 상태’가 된다. “이것이 모든 국가가 통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순환이다.” 어떤 정체든 공동선이 흩어지고 사익 추구가 정치의 목적이 되면 그 정체는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폴리비오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런 파멸의 순환을 막으려면 군주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혼합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혼합형 공화정은 그 뒤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과 미국 헌법을 거쳐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의 표준이 됐다. 또 이 혼합정체가 보편성을 확보한 뒤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밀어내고 정권교체론이 들어섰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가며 정권을 맡을 때 정치가 안정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정치의 안정과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힘과 좋은 힘이 경쟁하는 방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나쁜 힘이 좋은 힘을 제압하는 방식의 정권교체라면 그런 교체는 정치의 성숙도 나라의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정치 변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공익에 헌신하는 마음을 앗아감으로써, 사익과 탐욕이 법의 정신을 비웃으며 활개 치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부른다.
문득, 지금 우리는 무정부 상태에 있는지 모른다고 여겨지자 오금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