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 중전마마 역을 맡은 김혜수가 세째 대군의 혼외자 아기를 재우면서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원래는 인디언을 주인공으로 하는 에피소드인데 역사적 배경이 조선인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인디언을 운위하지 않을 뿐더러 그걸 간과한들 큰일 날 일도 아니다. 요는 콘텍스트, 무엇을 말하려고 하느냐다. 어쨌든 내가 가슴에 새긴 몇 안 되는 잠언(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중 하나다.
희한하게도 호피족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달이라도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유시유종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나다. 소싯적 눈에 콩깍지가 뒤집어 씌여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인 양 행복한 결말을 꿈꾸며 호기롭게 연애란 걸 했지만 그마저도 상대 역의 뜻하지 않은 변심으로 흐리마리, 불쾌한 오점으로만 남은 연애사였다. 어디 사랑뿐이랴. 나란 놈이 살아온 인생이란 게 늘 그런 식이었다. 처음은 왕성했으나 뒤로 갈수록 지지부진한 용두사미 꼴. 하여 산을 옮기려는 우공처럼 어리석은 우직함을 동경하는 건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같다. 뭐든 상관없으니 종지부를 찍어 보겠다는 것, 비록 그 결과가 바라던 바든 아니든 뭐든 간에 유종했다는 안도감이야말로 가장 느껴보고 싶은 기분이겠다.
인디언 기우제를 달리 풀어보면 이럴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에서)
종국에 이루고 싶은 인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