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단짝 친구와 단 둘이 서울로 2박3일 여행을 가겠대서 일언지하에 불허했다. 중3짜리 여자애 둘이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서울 바닥을 싸돌아다니겠다는 발상 자체가 철딱서니 없고 아슬아슬해서였다. 아무리 요즘 애들이 여간내기가 아니라 해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수십 분쯤 흘렀을까. 이번에는 수정 계획안이랍시고 들고 나온 게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 언니가 애들 옆을 찰떡같이 붙어다닌다는 조건이었다. 단짝 집에서도 영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보호자를 붙이겠다는데 딴지 걸 구실이 궁색해져서 일단 허락했다. 단, 체류기간을 2박3일에서 1박2일로 줄이는 여행 일정으로 바꾸고 그에 맞는 예산을 산출해 검사를 맡으라고 괜히 뒤끝을 부렸다.
제 어미를 닮았는지 밖으로 나다니는 것에 별로 거리낌이 없는 딸내미들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들 하지만 알바해서 번 돈으로 가고 싶은 데 떠나기를 서슴지 않는 큰딸에 이어 펜싱 운동을 하면서 심지는 굵어지고 강단까지 세진 막내딸마저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새마냥 미지의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려 드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아직은 버겁다. 걔네들 또래였을 무렵 나도 답답한 집구석을 박차고 나가 허랑방탕을 일삼았던 전력이고 보면 표리부동이 유만부동이지만 그때 탕아가 부모가 되고 나니 소극적, 미온적, 보수적 따위 꼰대스러운 '-적'만 머릿속에 과적재되어 꼴사납게 변해 버렸다.
허나 시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시대는 급변했고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걸.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애들도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떠나 보내는 연습을 해 버릇해야 누가 먼저 떠나든 영영 떠날 즈음 섭한 감정이 그나마 덜하지 싶다. 어쩌면 부모란 이별에 익숙해지도록 늘 연습을 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사는 불쌍한 족속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