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

by 김대일

이재익이라는 SBS 라디오 PD가 한 칼럼에서 ‘그의 노래는 깊고 현명하게 흐르는 강과도 같다. 마른 대지를 넉넉히 적셔주는 강. 느리게 흘러야 할 때와 콸콸 넘쳐 흘러야 할 때, 가만히 고여 있어야 할 때를 아는 강’(한겨레, 2020.04.17.)이라고 최백호를 평했다. 나라면 이렇게 씨월거리겠다.

쓸쓸하고 슬프고 처량한데 듣고 나면 체증이 가라앉는 듯 후련해지는 목소리와 그가 부른 노래. 길지 않은 인생 그만 낭비하고 이 계절만이라도 제발 음미하라며 살살 달래는 할아버지 같은 존재.

지난 11월 새 앨범이 나왔다는데 여태 몰랐다. 길을 걷다 라디오로 새 앨범 수록곡 중 한 곡을 우연히 듣게 됐다. 그길로 돼지국밥 가겔 들러 소주 한 병을 깐 뒤에야 귀가했다. 감정의 멱살을 틀어쥐고선 마구 흔들어 대는 그의 노래가 나타나면 으레 반응하는 내 버릇이다. <부산에 가면>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

책을 읽으면 머리카락 몇 올이 돋아나는 것 같아/아주 큰 무엇은 아니고 딱 그만큼만/아주 작은 그만큼만/그래도 옷에 묻은 흙을 털고/신발 끈을 조여매는 힘은 생기지/노래도 그래/먼 기적소리처럼/가슴 뛰던 젊은 날의 울림은 아냐/그냥 헌 모자 하나 덮어쓰고/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가고 싶은 정도이지/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으며/아직은 눈물 흔적 지우고 살아/내가 그래/당신은 어때(최백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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