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씹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시간을 죽이는 방법도 없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주朱씨 성을 가진 손님은 국민 혈세만 축내는 것들은 싹 걷어내고 아예 실한 것들로 국회의원을 수입하자고 입에 게거품을 물더니 1980년대 뻐꺼지 대통령이 전횡을 휘두르던 시절 국회의원 선거 나갔다가 가산을 거덜내고 잠적한 집안 형님 사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다 같은 성씨인 현재 여당의 유력 정치가는 다 좋은데 추진력이 별로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낼 즈음 커트와 두피마사지가 끝나서 20분에 걸친 손님과의 대화에 이만 종지부를 찍을까 하다가 아니 물어보면 나중에 궁금해서 미칠 성싶어 대화의 끈을 끝내 놓지 못했다.
"한국의 주씨는 단일 성씨입니까?"
한국에는 붉은 주朱와 두루 주周 두 성씨가 있는데 서로를 오랑캐 족속이라고 얕잡아본다나. 통상적으로 붉은 주朱씨가 후손이 더 번성한 대성大姓인데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가 시조라는 대목에서는 나라 세운 표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논개가 성은 주씨 이름이 논개인 주논개(물론 붉은 주朱씨)임은 학식이면 학식, 기개면 기개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가문이란 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역사적인 증거 아니겠냐고 또 다시 게거품을 무는 주朱씨 손님이시다. 이쯤에서 또 도지는 궁금증.
"중국 명나라 세운 주원장도 주씨 아입니까?"
"그 주는 두루 주周씨라요. 껄뱅이짓에 땡중 노릇, 하다하다 도적질까지 일삼다가 운때가 맞아 황제가 됐지만서도 오랑캐나 다름없어요."
묵찌빠해서 한국사 1급 자격증을 딴 게 아니라면 역사 공부 열나게 할 무렵 건성으로라도 봤던 게 새록새록 떠올라 붉은 주朱씨가 맞을 낀데 미련을 못 버리는 내 말문을 막고서 아퀴를 짓는다.
"어허, 두루 주周라니까네."
더 대들었다가는 단골 잃겠다 싶어 말았지만 주朱씨 손님 나가는 뒷모습 확인하자마자 바로 인터넷을 열었다. 과연 오랑캐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