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신청곡 사연에 솔깃했다. 졸업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보냈는데 친구처럼 지내던 반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무척 아쉬워하는 사연이었다. 아이들도 제 담임 마음처럼 석별의 정이 애틋한지는 모르겠으나 아침 댓바람부터 클래식FM 프로에 그런 사연을 보낼 정도로 감성 만렙인 담임을 만난 아이들의 행운이 솔직히 부러웠다. 부럽다라…, 불행하게도 학창 시절 선생다운 선생을 만나본 적 없는 내가 인생의 사표로 삼을 만한 스승이 갈수록 희귀해진 교단에 냉담한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렇듯 선생과 학생들이 알콩달콩 지낸다는 닭살 돋는 사연만 들으면 부럽다 못해 질투마저 일 지경인 건 초중고 12년 동안 그 누구도 따뜻하게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준 선생이 없었던 불운이 한스러워서겠지만 머리에 피도 아직 안 마른 열세 살짜리 사내아이한테 꿈과 희망은커녕 무자비한 체벌을 가함으로써 선생이란 족속에 대한 증오심만 부추긴 국민학교 6학년 담임과의 질긴 악연을 나부터 끊고 싶은 오래된 바람의 다른 표현이겠다. 그 담임이 어디서 사는지, 살아는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글에 기대어 나부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의식은 행여 우연히라도 그와 마주친다 해도 내가 먼저 떳떳하게 고개 숙여 스승의 예를 갖추고 싶어서다.
그런 내 마음을 허구를 빌어 1년여 전에 써본 글이 아래 글이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 문득 기억이 났다.
<선생님의 면도>
교탁을 치우자 칠판 앞이 훤했다. 불려 나가 밀대걸레 나무손잡이로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았다. 손잡이가 부러지자 담임은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발을 바꿔 가매 연신 엉덩이를 걷어찼다. 일방적으로 린치를 당하면서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게 좀처럼 없었다. 국민학교 6학년짜리 사내애가 담임한테 폭행에 가까운 체벌을 당해야 할 이유로 뭐가 있을까. 설령 있다 한들 그게 죽도록 처맞을 만치 무도한 것일까.
- 부반장이나 됐으면서 못된 것만 배운 개새끼.
국민학교 바로 옆에서 부모가 계란 도매상을 하는 같은 반 여자애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은 진작에 알았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기가 싫었다. 좀 산다고 젠체하는 꼴은 역겨웠고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로 찾아와 학생들이 보건 말건 담임한테 뭔가를 건네며 비굴하게 웃고 가는 그 여자애 엄마의 살이 통통 오른 얼굴은 더 꼴 보기 싫어서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학예회 준비가 한창이던 가을 어느 날, 연극 여주인공이 그 여자애로 갑자기 바뀌었다. 담임의 일방적인 변경 지시였다. 대본과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 연극 파트 인원들은 방과 후에도 모여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원래 악기 연주 파트였던 계란 도매상 딸내미가 부반장이 남자 주인공인 연극 파트로 갈아탄 이유는 뻔했다. 여자애 엄마가 며칠 전 교실로 와 담임에게 누런 봉투를 건네는 걸 봤다는 아이가 있었다. 주인공이 바뀌고 재개된 연극 연습. 대사를 채 다 외우지 못해 자꾸 버벅대는 여자애를 보다 못한 부반장이,
- 대사도 못 외우면서 무슨 주인공이람.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니?
쏘아댔다. 다른 아이도 아니고 부반장이 자기를 빈정거리는 게 속상했던 여자애는 엄마 앞에서 울음보를 터뜨렸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아이 엄마는 그길로 담임선생한테 제멋대로 내용을 부풀려 쏘아댔다. 이를테면 연극 파트 아이들이 여자애를 왕따시키는데 그 주범이 부반장이고 그 못된 녀석이 대사를 못 외운다면서 애를 때리기까지 했다는 둥. 담임은 당사자인 부반장의 해명은 애시당초 들을 마음이 없었다. 누런 봉투를 주고받는 돈독한 사이인 여자애의 엄마를 달래는 일이 급선무일 뿐. 그러자면 이 사달을 최대한 신속하게 수습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하고 가장 효과적인 게 체벌이라고 판단했다. 그것만이 담임으로서의 능력이자 몸값이라 여겼으니까.
부반장은 지난 봄 학생회장 선거 때도 봉변을 당했다. 학생회장 선거는 6학년 각 반 반장들 중에서 선출되는 게 통상적이었다. 아이는 반 투표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반장으로 선출되었지만 담임은 학생회장 입후보자로 부적격하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부반장으로 내려앉혔다. 대신 국민학교가 위치한 동네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남자 아이를 단독후보로 다시 올렸다. 그 아이는 반장이 됐고 학생회장도 됐다. 1980년대 중반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었다. 아파트에 산다는 아이는 당시에는 흔치 않던 운전사가 딸린 늘씬하게 잘 빠진 중형 세단을 타고 등교했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고양이털 같은 걸 둘러쓰고 목걸이와 귀고리를 치렁치렁 매단 귀티 나는 아줌마가 뒷자석에 늘 함께 탔다. 그 아줌마는 반장 선거와 학생회장 선거일 전후로 학교 안을 숫제 활보하고 다녔다. 학생회장 선거가 끝나고 볼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귀티 나는 아줌마는 담임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 건물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부인 뒤를 졸래졸래 따라간 담임은 교문을 떠억허니 막고 주차해 있던 중형 세단에 이르자 후다닥 먼저 달려가 아줌마의 수행원이라도 되는 양 뒷문을 열어제쳤고 거들먹거리면서 차를 탄 귀티 나는 아줌마는 고개만 까딱거렸다. 유행이 한참 지난 영화의 한 장면척럼 반 아이들은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 아이들끼리만 통하는 담임의 별명은 망측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사타구니를 긁어 대는 담임의 얄궂은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고질적인 습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아이들이 보건 말건 거기를 연신 긁어댔다. 그런 담임을 여자애들은 흉하다며 연신 고개를 돌렸고 남자애들은 담임의 요상한 버릇을 따라하며 재밌어했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별명이 '좆쟁이'였다.
<김 씨네 이발소> 주인이자 <대성이용학원> 원장 대리인 김 씨가 모처럼 외출을 했다. 국민학교 동창회는 김 씨가 특히 꺼려하는 모임이지만 회장인 강지형 원장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기분으로 참석하긴 했다. 강 원장과는 국민학교 동창 중 유일하게 끈이 닿는 허심탄회할 만한 사이이다. 호빵맨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이 후덕한 인상을 준다. 수완이 좋아 운영하는 한의원은 늘 문전성시다. 동창회장은 강 원장처럼 푼푼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추대된 뒤 단 한번도 회장이 갈리지 않았다. 그래도 강 원장은 국민학교 동기들 만나는 재미가 사는 낙이라면서 모임을 주관하는 건 물론이고 사재를 털어 운영비로 보탰다. 한때 국민학교 동창회 붐이 일어 모임을 하면 가게 한 곳을 아예 몽땅 빌려서 치룰 정도로 대성황이었는데 요새는 명맥만 유지한 채 몇몇이 겨우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는 조촐한 모임으로 변했다. 아담한 풍경과는 달리 흘러간 옛 추억을 곱씹는 재미로 왁자지껄한 건 안 변했고 그때 그 사람이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더라는 '카더라통신'은 여전히 득세했다. 남 얘기 하는 건 불구경만큼 재밌는 법이니까.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낯이 별로 안 선 한 남자와 조곤조곤하게 얘기를 나누던 강 원장 낯빛이 어두웠다. 그런 강 원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 씨가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좆쟁이 선생 알지?
- 갑자기 이가 갈린다야.
- 얼마 전에 한의원으로 찾아왔더라구. 몸이 불편해 침을 맞고 싶다면서.
- 어디가 아프다디?
- 안색이 너무 안 좋더라. 얼굴이 시커매. 간 문젠 것 같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 받아보시라고 권했지.
- 근데?
-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진철이한테 부탁했어. 얘가 마당발이야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선. 혹시 비용이 부담돼서 그러신가 싶어 진철이한테 병원 좀 알아보랬어. 그리고 연결이 됐지.
- 그러면 된 거 아냐?
- 진철이가 병원 수속 관련해 선생께 설명하려고 동창회 명부에 나와 있는 자택을 갔는데 사모님밖에 안 계시더라는 거야.
- 마침 외출 중이었겠지.
- 그게 아냐. 사모님과는 이혼한 지 여러 해 됐대. 이혼 위자료조로 자택은 사모님 명의로 바뀌었고 선생은 딴 데 사는가 보더라구.
- 요새 황혼 이혼이 많대잖아. 대수도 아니구만 뭘.
- 문제는 그게 아냐. 좆쟁이 선생이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와 늦바람이 난 게 이혼사유이긴 한데 그 여자가 또 꽃뱀이었다나 뭐라나. 사모님과 갈라선 뒤 그나마 있던 재산 몽땅 들어먹고 자취를 감췄다는 거야. 완전 거덜이 난 거지.
- ….
- 사모님한테 선생 병환 얘기를 꺼냈더니 그 인간 일에는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냉랭하더란다.
- 그럼 어떡하냐?
- 동창회에서 도와준대도 한계가 있어. 그러니 고민이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이발하던 학원생인 김여사가 노인과 옥신각신했다.
- 머리는 깎아드리는데 면도는 못해요.
- 자고로 이발의 대단원은 면도야. 이발사가 되겠다고 비싼 돈 들여 학원 다니면서 면도는 못하겠다니. 그럼 뭣하러 학원엘 다니누? 돈이 남아 도느갑네. 돈이 철철 흘러 넘쳐 처치 곤란하면 나나 좀 노나주슈.
- 근데 이 할아버지가 아까부터 거시기쪽을 왜 자꾸 긁어대. 망측하게시리.
무료이발은 커트까지다. 자격증 시험을 대비해 실제 사람을 상대로 연습이 필요한 학원생이 희망하면 무료이발 대상자한테 의중을 물어 아주 가끔 면도와 정발(드라이)을 하긴 한다. 하지만 위생과 안전 때문에라도 차라리 수염이 부착된 통가발로 연습하는 걸 더 선호해 흔한 일이 아니다. 노인의 비아냥에 속이 상한 김여사가 커트보를 치다 말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김 씨가 다가가 거울에 비친 마스크를 쓴 노인의 두 눈을 유심히 쳐다봤다.
- 어르신, 마스크 한 번 벗어보시죠.
- 역병이 창궐했는데 사람 많은 데서는 마스크 벗는 법이 아니우.
- 물론 그렇지만 면도를 하자면 어차피 면도 거품 바르고 얼굴에 온습포도 올려야 합니다. 마스크 위에다 할 순 없잖습니까?
달리 대꾸할 거리가 없었던 노인이 마스크를 천천히 벗었다. 한 손으로는 마스크를 넓적다리에 내려 놓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연신 긁어댔다.
- 여자분들이 민망해합니다. 자꾸 거시기쪽으로 손이 가시면.
- 미안하외다. 젊을 때 습진이 심해 고생했다우. 하도 긁어댔더니 아주 몹쓸 버릇이 됐버렸어요. 덕분에 망측한 별명까지 얻었지만.
- 망측한 별명이라니요?
- 그런 게 있소. 애들은 내가 모를 거라고 지들끼리 불러댔지만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그래도 어쩌겠수, 내가 자초했으니.
- 애들이라면 자식들 말인가요?
- 자식은 무슨. 내가 예전에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이오.
- 교사셨구나.
- 초등학교, 아니 예전엔 국민학교였지.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녔어도 망측한 별명이라도 붙여준 그 학교 애들이 제일 생각이 많이 난다우.
- 추억이 많으셨나 보네요.
- 내가 걔네들한테 죄를 많이 졌어. 애들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떡고물에만 온통 정신이 팔렸었지. 학부모 눈치나 살피고 적당히 비위 맞춰 주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으니까. 그러니 담임으로서 애들한테 신경이나 제대로 썼겠냐구. 당연히 추억거리랄 것도 없지.
- 그런데 애들 생각이 왜 납니까?
언성이 높아진 줄도 모르고 김 씨는 따졌다. 그런 김 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회상하듯 노인은 눈을 감았다.
- 졸업식 때였어. 입학식이든 졸업식이든 일년에 한 번 가지는 따분한 연례행사 정도로만 치부했었는데 그해 졸업식만은 달랐어. 아까도 말했지만 난 우리 반 애들한테 전혀 신경을 안 썼어. 걔네들을 떠나 보내는 날에도 한눈을 팔았으니까. 행사 마치고 학생회장이면서 반장이기도 한 아이의 아빠가 초대하는 식사 자리로 얼른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어. 일 년 동안 수고했다며 혹시 금일봉이라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야.
내 마음이 그럴진대 애들이라고 담임한테 석별의 정 따위가 있으랴 싶더라구. 가는 정이 없었는데 올 정이 있을 턱이 없지. 근데 졸업식 마치고 반에 모인 아이들이 막 울더라구. 일 년 동안 철부지같은 자기들을 잘 가르쳐 줘서 정말 고맙다면서 말야. 똑같은 말 계속 하지만 난 걔네들한테 정말 해준 게 하나도 없었어. 근데 울컥하대. 갑자기 내가 그렇게 추해 보일 수가 없더란 말이지.
김 씨 눈이 충혈되었다. 노인을 얼마나 빤히 노려봤으면.
- 썰물처럼 다 빠져 나간 교실에서 한동안 오도카니 앉아 있던 부반장이었던 남자애가 일어서서 나한테 다가오더라구.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또박또박 끝인사를 건네는데, 지금도 그애의 두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아. 걔한테는 몹쓸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그랬던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동자는 형형하면서도 순진무구했어. 원망, 증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머리를 다 깎고서 의자를 누였다. 면도 거품을 풀어 얼굴에 바른 뒤 온습포를 덮었다. 면도칼을 대기 전 마스크를 쓴 김 씨가 넌지시 말했다.
- 면도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미운 정도 정이랍니다 선생님.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이 눈을 떠 김 씨의 마스크 위 두 눈망울을 쳐다봤다.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