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깃든 아름다움을 만들려는 노력

by 김대일

내가 요즘 좀 침울하다. 이럴 때가 가끔 있다. 일마다 시큰둥하고 따분해하다 급기야 허무해진다. 마음이 동해 쓰는 글인데도 쓰기도 전에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라며 푸념부터 뇌까리면 볼장 다 본 게다. 백약이 무효가 요즘 딱이다.

무미건조한 형국을 급반전시킬 변변한 특단의 조치랄 게 없지만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다가는 더 망가지기 십상이라 무슨 수든 써야 한다.

김영민 교수 신간을 샀는데 책 제목이 타이밍도 절묘하게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평론)이다. 이건 부지런히 읽는 중이다. 내가 아는 에세이스트 중 가장 글맛 잘 내는 글을 쓰는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데다 그가 풀어내는 문장들에서 내 허무를 잠재울 방법이 혹시 있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샅샅이 뒤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마침 나를 살짝 들었다 놓은 한 대목에 꽂혀 잘근잘근 곱씹으면서 오늘도 징징거리는 내 허무를 달래다가 혼자 해 처먹긴 아쉬워서 당신의 무고한 일상을 기원하며 여기에다 옮긴다.

윌리엄 모리스는 1879년 2월 19일 버밍엄 예술협회와 디자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바로 저 『로빈슨 크루소의 다음 여행』의 구절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급조된 마을 벽화나 빌딩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어리둥절한 대형 조형물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팔기 위해 허겁지겁하는 노동이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공들인 노력, 그리하여 일상의 디테일이 깃든 작은 예술과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말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노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윌리엄 모리스는 인간을 비천한 노동으로 내모는 무지막지한 산업화와 상업화에 저항하며,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렇지만 혁명의 구호가 울려 퍼질 광장에 세워질 거대한 이념적 조각 작품을 만들거나, 대형 운동장에서 행해질 집단 체조 디자인에 종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상을 채우는 벽지, 직물, 가구 등의 디자인과 생산에 주력했다. 일상의 물품에 깃든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하는 공들인 노동이야말로, 삶을 결국 구원하리라고 굳게 믿으면서.(김영민,『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159~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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