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날인 토요일 마수걸이 손님은 과묵해 보였던 단골이었다. 매달 들르지만 말없이 스윽 들어왔다가 볼일 끝나면 말없이 스윽 퇴장하는 인물이라 그날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다 깎고 그 머리를 감은 뒤 벗어서 걸어뒀던 외투를 다시 걸치다 말고 그가 점방 한 쪽 벽면에 붙여 둔 트로트 가수 포스터를 보더니만 봇물 터지듯 갑자기 수다를 늘어놓더니 그 입을 다물 기미가 안 보일 때 직감했어야 했다. 오늘 하루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걸. 개업하고 얼마 안 지나서 공중파TV에도 출연(구체적으로 <아침마당>)한 트로트가수라고 자기를 소개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아내인 듯한 여자와 점방을 찾은 적이 있었다. 제일 비싼 염색을 주문한데다 부부 동반으로 이틀 연달아 두피마사지까지 받길래 다음날 그가 슬쩍 놓고 간 선거 후보자 벽보 사이즈만 한 전신이 나온 포스터(사인까지 직접 갈겨서)를 벽에 붙여 뒀다. 자주 올 듯 설레발이 미심쩍긴 해도 단골 예우 차원에서 말이다. 그럼 뭐해. 그 뒤로 발길 뚝 끊었는데. 아무튼 포스터를 본 단골은 사진 속 인물이 누구냐, 잘 아는 사이냐 꼬치꼬치 캐물어서 포스터를 붙인 전후 사정을 얘기해줬더니 그걸 듣고 나서부터 수십 분을 자기와 친분이 있는 트로트가수 이름을 줄줄이 대는 게 아닌가. 이름만 대는 게 아니고 그 가수를 아는지 인지도까지 일일이 확인하려 드는데 백 명 이름을 대면 한둘 겨우 알까말깐데도 눈치없이 솔직해지면 서운해할까봐 눈치껏 아는 척 하다 보니 별안간 피곤해졌다. 백미는 자기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어 특이하게도 '가수○○○' 식으로 저장해 둔 가수 이름들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자기가 지금 허언을 늘어놓는 게 결코 아니란 걸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이름 옆 사진까지 클릭해가면서 가수의 근황까지 소개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재즈 피아노를 친 적이 있고 트로트가수는 유명세에 따라 행사비가 다르고 그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걸로 봐서는 연예기획사나 행사기획사 방면에 잔뼈가 굵은 사람 같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안동역에서'를 부르고 <일꾼의 탄생>이라는 TV프로에 고정 출연 중인 진성 빼고는 들어도 모르는 사람 천지인데 더 아는 체 하기도 버거운데다 고문이나 진배없는 대화를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짓자면 내 쪽에서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수밖에는 없을 성싶어서.
마수걸이 손님이 가고 불과 한식경도 안 지나 집은 이 동네인데 직장이 전남 여수인 또 다른 단골이 들이닥쳤다. 보통은 할 말만 하고 마는 점잖은 양반이 날씨를 화두로 삼자 사람이 확 변신했다. 금요일 부산으로 넘어왔다가 월요일 여수로 돌아가는 게 주말 일상인데 전라도에 폭설이 내리자 부산 못 올 뻔했다면서 '징하다'는 전라도 사투리를 간간이 섞어가면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펑펑 내리는 눈만큼 펑펑거리며 왜자겼다. 낑낑대며 왔을 고생길은 언성까지 높아진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었는데도 자기 휴대폰을 열어설랑은 그날 찍은 수북히 눈 쌓인 밤 도로 사진을 내게 굳이 들이밀었다. 이 동작 어디서 많이 봤다. 이런 걸 두고 데자뷔라고 하지 아마. 눈이라면 군 시절 강원도 원통에서 2년씩이나 '징하게' 봐왔던 나로서는 속으로야 '선생님, 저런 눈은 눈도 아입니더'라고 되받고 싶지만 "이런 폭설이면 도로가 마비가 될 지경인데 어떻게 오셨어요?" 호들갑을 떨어대니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손님들 휴대폰 사진을 연거푸 보다가 기가 다 빨린 듯 축 늘어진 채 오전이 지나 점심 먹을 즈음에 낯이 선 손님이 들어왔다. 일흔 한 살이라고 묻지도 않은 자기 나이를 대는 손님은 일전에 나한테 머리를 맡긴 적이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고 밝혔다. 염색을 안 하는 대신 파뿌리 같이 센 귀밑머리가 안 보이게 스포츠형으로 각단지게 깎아달랬다. 한참 깎는데 정수리 한가운데 꿰맨 자국이 가로로 길게 나 있는 게 보였다. 거기로는 머리털이 나지를 않아 가르마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난 형국이었다. 내 눈이 계속 거기를 향해 있는 걸 눈치챈 손님은 경남 함양에 장만한 세컨하우스 차양 치는 공사를 하다가 부딪히는 바람에 생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세컨하우스라는 단어에 관심을 보이자 머리를 다 깎고 난 손님 외투를 걸치다 말고 또 자기 휴대폰을 열어제쳤다. 또 데자뷔인가. 내가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겠다. 수천수만 장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 앨범을 열더니 이건 꼭 보여 주겠다고 작심한 것들을 찾으려고 오른손 검지로 분주하게 스크롤을 해댔다. 세컨하우스 전경, 차양 공사하는 사진, 천 평이 넘는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무우로 처갓집 식구들과 김장 담그는 사진, 식구들 모여 퍼마신 소주병 무더기 사진들까지. 사진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찍은 시기와 찍을 당시의 상황까지 부연해서 설명하는 걸 듣다가 나는 그만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나주평야와 그 옆을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찍은 사진으로 기나긴 사진 관람의 종지부를 찍었다. 손님의 고향이라는데 장관은 장관이었다. 4년 전 전남 화순 운주사엘 들렀다가 조선소에서 일하는 친구 보러 전남 영암을 갈 때 맞닥뜨렸던 광활한 나주평야와 월출산의 기이함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내민 사진이 무척 반가웠고 호기심까지 일었지만 더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럴 기력이 별로 없었다는 게 더 솔직한 속내겠다.
'깎새는 머리만 깎아 드립니다. 맞장구친다고 휴대폰 열어 사진 보여주는 행위는 깎새의 건강에 몹시 해로우니 절대 삼가해 주십시오.'
이런 경고문이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