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통이 나의 즐거움, 샤덴프로이데

by 김대일

이용학원생 중 거제에서 오는 중국 교포 여성(이하 '거제샘'이라고 지칭하겠다)은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지만 말을 살짝 꼬면 잘 못 알아 듣는다. 이를테면 속담이나 관용구가 들어가면 어리둥절해하다 정확한 뜻을 재차 묻는 식이다. 하루는 가위 놀리면서 옆 자리 앉았는 학원 강사와 열심히 입도 같이 놀리던 거제샘이 말 중에 '배가 아파요'라고 칭얼댔다. 그러자 강사는 '사촌이 땅을 샀나 봐요?'라며 싱긋 웃어 보였고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뜬금없는 소리댜 싶었는지 한동안 멀뚱멀뚱 강사 얼굴만 쳐다보는 거제샘. 그 광경을 본 나는 구봉서-배삼룡 콤비에 버금가는 만담을 보듯 마스크에 숨어 피식거렸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타인이 잘 되는 것에 대한 시기심, 질투를 빗댄 말이라면 유사하긴 하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Schaden(아픔)+Freude(환희)=The Joy of Pain)'는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감을 이르는 말로써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쌤통심리, 잘코사니(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해 고소하게 여겨지는 일) 정도 된다.

샤덴프로이데의 대표적 사례로 2018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승리하자 영국과 네덜란드 언론이 독일의 패배를 고소해하는 보도로 대서특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조 4위를 한 독일 성적표에 가위 표시를 한 절단선을 그려 놓고선 "오려 두었다가, 우울할 때면 꺼내서 즐기세요"라는 조롱까지 등장했단다.(<신현호의 챠트 읽어주는 남자>, 한겨레, 2018.07.15.에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라고 했던 샤덴프로이데가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경쟁의식 때문이라는 견해가 가슴에 와닿는다.


한국 교육의 동력이자 메커니즘인 경쟁은 친구가 잘해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동창과, 입사 동기와, 이웃과, 본 적도 없는 엄마 친구 자식과 비교하며 나의 우위를 찾는다. 나와 남을,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기보다 무탈한 나의 현재에 안도하며 비교우위를 즐긴다. 세상이 온통 제로섬인 것처럼 누군가 잘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면 불행의 할당량이 나를 비켜가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속한 또는 내가 지지하는 우리 그룹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고 슬퍼하겠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는 불행이 닥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만 괜찮으면 상관없다.(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세상읽기-타인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 2020.02.07)


이용학원에 가면 알아서 가위만 잘 놀리면 될 일이다.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 단순한 본질과는 하등 상관없는 별일 아닌 해프닝을 거제샘의 우매함으로 오역해 무심결에 고소해했는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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