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풍경

by 김대일

쉬는 날인 어제 나한테는 겨울철 별미인 굴무침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자주 들르는 반찬가게는 장산역 3번 출구를 나와 조금 걷다보면 나타나는 부산은행 지점이 1층에 자리잡은 건물 지하에 있다. 그 반찬가게로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 판대기 몇 장 둘러 놓고 자기 영업장임을 과시하는 관록의 달고나 영감이 여전히 달고나를 팔고 있었다.

작년 초여름 즈음 그 달고나 영감에 관한 소회를 글로 남겼었다.


장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1층이 은행 지점인 건물 한 켠에서 늙수그레한 영감이 늘 자리잡고는 달고나를 팔고 있다. '늘'이라고 단서를 단 건 우리 가족이 이 동네로 이주하던 20여 년 전부터 한결같이 그 자리에 터 잡은 까닭이다. 가히 터줏대감의 반열이다.

영감은 들을 순 있어도 말을 하지 못 한다. 그러니 호객 역시 할 수 없다. 영감은 얄브스름한 판대기 몇 장을 둘러 자기 영업장임을 표시하고선 그 조붓한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버너에 설탕을 녹여 만든 달고나를 봉지에 담아 판다. 호객을 할 수 없는 그가 20년이 넘도록 무탈하게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수완이라면 애틋한 사연이라도 담긴 듯한 눈매로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간청하듯 시선을 보냄으로써 좌판에 널린 달고나와 말 못하는 노인의 애처로움이 화학 작용을 불러일으켜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한 설득력에 있다고 그 거역할 수 없는 상술에 여러 번 포로가 돼 본 자로서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가히 추억팔이의 달인이다.

영감은 담배를 즐긴다. 손님이 뜸해 무료해지면 좌판에서 나와 옆 과일 파는 아저씨와 맞담배를 피우곤 한다. 한 번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주섬주섬 꺼내는 영감을 봤다. 그가 꺼낸 담뱃갑은 빨간색이 선명한 '말보로'였다. 그 광경을 본 뒤로 나는 더 이상 달고나를 사지 않는다. 달리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 굳이 설명하자면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듯한 배신감 같은 게 영감을 배척시키고 말아서다. 가히 반전의 대가이다.

1990년대 후반 서울서 직장생활하던 무렵, 종로엘 나가면, 정확히 어디쯤인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하여튼, 신호등에서 대기하는 행인들에게 껌을 파는 살짝 허리가 굽은 노파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종로 바닥을 거닐어 본 행인이라면 누구나 노파의 강권에 한번쯤 난처해 본 경험이 있었을 정도로 가히 명물이었다. 그런데 껌 행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껌팔이 노파가 운전사 딸린 '벤츠'에 올라타는 걸 봤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로 노파가 보이면 나는 다른 길로 피해 다녔었다. (2021.06.05.)


그때나 지금이나 영감은 변하지 않았다. 담배 종류가 바뀐 거 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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