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주 토요일 외아들 결혼식이 있어 난생 처음 염색을 하려는 손님은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전다. 그 손님은 약간 불편하게 걷는 품 외에 여름은 말할 것도 없고 쌀쌀한 날씨에도 목덜미가 땀으로 흥건해서 커트보를 칠 적마다 저으기 부담스러웠던 게 떠올라 쉽게 기억한다.
결혼을 꺼리는 요즘 세태에 서른여섯 적당한 나이로 장가를 드니 부모 입장에서야 반갑고 고마운 경사인데 이왕 낳을 자식이면 셋은 낳아야 저희끼리 의지가지로 외롭지 않을 거라면서 세계 꼴찌에 빛나는 나라의 출산율 분발에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예비 며느리까지 얻게 되니 여한이 없다며 헤실거리는 손님이나 내 일처럼 흐뭇해하는 깎새나 훈훈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였다. 얼굴 본 적 없지만 하는 짓짓이 시어머니와도 잘 어울리겠다고 덕담이 빠질 리 없건만 손님 별안간 쭈뼛거리더니 아들이 군 제대할 무렵이었으니까 12년 전에 갈라섰다고 무심한 척 툭 던졌다. 딴 남자랑 어미가 바람 핀 게 들통이 나 이혼한 부모지만 아들은 양친이 결혼식장 부모석에 꼭 앉아 달라고 애원했고 아비는 마지못해 받아들였단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일순 싸해졌다.
아들은 군대를 갔고 개인택시 몰다가 귀가를 하면 있어야 할 사람이 집에 없는 경우가 잦았다. 친구와 찜질방엘 갔다는 둥 난데없이 울릉도로 여행을 떠났다는 둥 되도 아닌 핑계를 댔지만 진작에 낌새를 챘다. 한번은 등산 다녀온 여자 몸에서 여관 냄새가 짙게 났다. 내연남은 인근에 사는 관광버스 기사라고 했다. 여자가 이혼장을 먼저 들이밀었다. 군대 간 아들 생각은 안 하고 뭐하는 짓이냐, 제대하면 그 녀석 의사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나중엔 달랬다. 덧정 없고 미련은 더 없었지만 아들한테 미안해서라도 녀석이 참고 살라고 하면 그럴라고도 마음 먹었다. 헌데 전후사정을 들어본 아들이 선뜻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길로 깨끗하게 갈라섰다.
하지만 이후로 울화가 치밀어 미칠 노릇이었다. 밤낮없이 술에 기대 살았고 죽지 못해 살았다. 그 여파인지 오른쪽 다리로 풍이 오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못 밟아 운전을 못할 지경에 이르자 택시를 관뒀다. 넉넉치 않은 연금으로 겨우 제 앞가림만 하는 게 지금 형편이다. 제 어미와는 간간이 연락을 이어왔는지 아들이 한번은 전하길 내연남과는 몇 년 같이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주변 지인 중에 어차피 성치 못한 몸 나이 들수록 서럽기만 하고 저쪽도 갈라서고 독수공방한 지 오래라고 하니 이참에 아들 봐서라도 다시 합치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등 떠미는 이가 없지 않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단다.
"모르면 모를까, 다른 남자한테 가랑이 벌린 여편네라는 걸 뻔히 아는데 당신 같으면 받아들이겠어?"
듣는 내내 미심쩍었다. 남자의 서술이 편향적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어서다. 들은 걸 암만 곱씹어봐도 부부 사이에 갑작스런 파국을 맞게 한 결정적인 요인을 짐작조차 못하겠고 더욱이 장성한 아들 눈치까지 봐야 할 입장에서 느닷없이 바람이 났다는 건 심한 비약 아닐까? 콩가루 집안이라 화냥기가 타고났다며 처가까지 싸잡아 매도한들 설득력은 더 빈약했다. 일이 그리 된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남자의 일방적인 넋두리만으로 한때 그와 한 이불을 덮고 잔 여자를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매장시키는 건 영 부당하다. 뜸 들이는 시간이 얼추 지나 샴푸를 준비하려다가 손님이 지나가는 말인 양 주워섬기는 걸 놓치지 않은 나는 똥 누고 밑 안 닦은 듯한 껄쩍지근함을 마침내 풀어줄 가느다란 실마리를 잡는다.
"월급쟁이 생활하다 잘못 엮이는 바람에 안 좋게 끝낸 뒤 뭐하면서 먹고 살까 궁리하던 차에 개인택시 살 기회가 생겼어요. 수중에 돈이 좀 있었지. 마누라한테는 얘기 안 했어. 일단 사고 봤지 뭐."
염색약을 바르고 샴푸하기까지 뜸을 들이는 20분 남짓이 한 사람의 희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시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