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by 김대일

1분이 60초라는 것도, 한 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고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김영민)는 게 지당하다면 2022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라고 어제와 다를 바 없으니 나는 무심하게 점방을 지키겠다.

매달 말일을 그 달의 마감일로 잡았으니 2022년 12월 31일 폐점하는 그 순간까지 한 사람의 머리라도 더 깎아 재껴 매출고를 쥐어짜내겠다는 애살을 떨지언정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고상한 의미를 부여할 까닭은 없다. 어제나 오늘이나, 지난달 말일이나 이번달 말일이나 늘상 맞닥뜨리는 영업일 중의 하루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해넘이 날이 토요일이라고 해서 출근길이 붐비지는 않을 게다. 기념비적인 구랍 말일 밤을 즐기고자 체력을 비축하려고 아침잠을 늘어지게 자는 이들이 많아 한산할지 모르니. 다만 해넘이가 임박해지는 퇴근 무렵 전철간은 해넘이와 해맞이를 보러 해운대바닷가로 향하는 이들과 가는 길이 겹쳐 복작댈 걸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해운대역을 지나고서도 전철역 두 개를 더 달려 2호선 종점인 장산역에 내려 어제처럼 아파트 사이로 난 고즈넉한 산책길을 걸어 집에 도착해서 으레 늦은 저녁을 먹은 뒤 소화를 시킬 겸 한 시간 가량 멍을 때리다가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자주 듣는 팟캐스트를 자장가 삼아 틀어 놓고 곤한 잠을 청할 것이다. 다음날이 새해 첫날이라는 거창한 인식보다는 첫 끝발이 개 끝발이 안 되게 적당한 선에서 매상이 올라오는 새달의 첫 영업일이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오늘은 어제였고 내일도 오늘처럼 불행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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