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와는 다르게 집요한 구석이 있는 내가 요즘 신간은 물론이고 김영민 교수의 예전 저서까지 다시 끄집어내 읽는 데는 다 까닭이 있어서네. 지가 무슨 질풍노도라고 무섭게 달려들더니 내 멱살을 바짝 움켜잡은 허무감 탓에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하고 축 처져 버린 지 좀 됐다. 이래가지고서는 사람 몰골이 아닌 성싶어 돌파구를 찾자니 점방에 매인 몸이라 기껏 한다는 짓이 손님 뜸한 시간에 스트레칭이나 맨손체조, 푸쉬업 따위 나름대로 몸을 귀찮게 다루는 게 아니면 망할 놈의 그 덧없음을 일거에 잠재울 재주라도 숨겨놓을 법한 비법서를 찾아 뒤적거리는 수밖에 없다네. 마침 딱딱한 정치외교학과 교수인데도 이 시대 내로라하는 문호 못지않게 글발 하나는 끝내주는 김영민 교수가 '이 양반 내 마음을 읽는 투시력까지 장착했나' 싶게 책 제목 한번 기막히게 작명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신간과 필시 작년 대선이 끝나고서부터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게 확실하면서도 매달 5만 원이 넘는 구독료를 꼬박꼬박 지불하는 게 아까워서라도 신문 지면을 넘겨야 하건만 여전히 마음만 너덜너덜 지칠 뿐인 작금의 정치적 허무까지 달래줄지 모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급히 사서는 삼시 세끼 다 받아처먹는 주제에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대는 몹쓸 허무감을 달래보려고 열나게 읽었다네.
다 읽긴 했어. 비기를 얻었으니 지긋지긋한 허무를 한칼에 골로 보냈느냐고 묻는다면 자네 너무 순진한 걸세. 허무는 사라지지 않는다네 내 무덤의 관을 덮기 전까지는. 평생 블랙독(우울증)을 달고 살았다는 처칠처럼 도발적인 녀석 입에 간식을 넣어주면서 내 곁에 두고 잠잠하게 지내게 하는 수밖에 없다네. 대신 간식이 녀석 입맛에 제법 맞아야 그 잠잠함이 오래가는 법이니 간식 잘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네만.
인터넷을 검색해 교수의 면상을 보면 느낄 테지만 평생 학자연하다 죽을 타입이야. 고루하다, 고리타분하다, 진부하다 따위 꼰대스러운 형용사란 형용사를 다 갖다 붙인들 그 양반을 설명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게 더 솔직한 인상이지.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극적 반전이 대단한 법이라네. 그는 사색이 깊은 사람일세. 웅숭깊은 사색의 결과물로 나온 글은, 희한하게도 일상적이네. 그렇다고 글이 부박하지도 않네. 오히려 일상성에서 빚어지는 고상함, 익살스러움, 심오함이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가격하는 참신함으로 와닿는다네. 이번에 읽은 2권의 책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를 고양시켜서 급기야 집구석에 처박아 둔 예전 그의 저서까지 다시 꺼내는 지경에 이르게 됐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와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네. 김 교수의 책을 읽으면 나는 없던 생각까지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야말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네.『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일전에 두 번이나 숙독을 했음에도 요즘 다시 책장을 넘기자 세삼스레 눈에 밟히는 대목이 수두룩하네. 책을 한번만 읽는 법이 아니란 걸 절감하는 중일세.
내가 이렇게 구닥다리 연례행사로 전락한 연하장인 양 자네에게 글을 써보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네.『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다가 발견한 두 대목이 나와 자네의 관계성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한번 들어보시게. ( 이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