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꼭 만나야 할 이유

by 김대일

구랍 말일 막내고모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얼마 전 오촌 당숙 딸이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마누라와 두 딸만 참석했다가 경기도에서 내려온 막내고모와 결혼식장에서 마침 만났나 보더라구. 막내고모는 우리 식구들을 보고 나서 연말이고 하니 겸사겸사 내게 안부를 물으신 거고.

서울에서 막 직장생활한답시고 아등바등할 무렵인 1997년, 군대 선임과 회사 고참 자취방을 전전하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막내고모는 당신 집 방 한 칸을 쓰게 했다. 이후 장가들 때까지 2년 가까이 경기도 평촌 아파트에서 기거했었다. 지금 내가 사는 해운대 신시가지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평촌신도시는 아파트 단지 일색이어서 무척 세련됐고 주거 여건이 편리했다. 고모네 아파트는 평수가 제법 넓어서 얹혀사는 주제에도 내 집처럼 안락하게 지냈다. 물론 시집 가기 전까지 나를 끼고 유난히 이뻐라 했던 고모와 옛날 같으면 양반소리 듣고도 남았을 점잖기 이를 데 없는 고모부의 이해가 하해와 같아서였겠지만.

군식구긴 해도 2년 꼬박 함께 지내다 보니 당시 고모는 내 부모님보다 더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없이 속속들이 다 알았다. IMF 시국이던 무렵 구조조정 칼날이 언제 내 목을 칠지 모르는 회사생활이라던가 타향살이로 울적해진 심사를 달래줄 주변 벗들이 누구인지까지. 그 중 특히 연애에 관해서는 조언자의 역할을 뛰어넘어 기획자의 영역에까지 넘나들 정도였다.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남동생의 여자친구(이후 계수가 된)가 소개해 준 서울내기 여자와 한창 연애 중이었다. 상냥하고 애교가 넘치는 서울여자에 홀딱 빠진 내가 회사 다니는 시간만 빼고 그 여자와 붙어다니다시피 해 고모 가족들의 일상에 적잖게 누를 끼쳤는데도 고모는 타박 한번 준 적 없이 되레 열성적으로 성원해 주셨다.

하루는 여자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면서 고모는 사는 데가 어디냐고 물었다. 삼청동 어디쯤이라고 대답했을 때 잠시 심각해진 고모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자의 아버지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식품 그룹의 자회사 중역이라고 철부지처럼 지껄이던 내 말을 기억하고 있던 고모는 예비 며느리라도 맞듯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여자는 평촌 고모댁을 방문한 뒤로 더더욱 살갑게 굴었고 둘 사이의 분위기가 농익은 과일마냥 무르익을 무렵 나는 양친께 정식으로 소개시켜 드리고자 여자와 부산을 찾았다. 그날 저녁 다시 서울로 올라온 직후 여자와는 소식이 끊겼고 내 주변에서 영영 사라졌다.

깎새가 되어 새로 차린 점방, 내 두 딸 진로를 밑천 삼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막내고모는 불쑥 그때 그 여자 이름을 들먹거리더니 "걔하고 살았으면 벌써 도망가고도 남았지. 지영엄마(마누라)만한 여자도 없다 얘."하면서 마누라 역성을 들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여자 이름을 막내고모로부터 들으니 도둑질하다 들킨 놈마냥 갑자기 전율이 일었다. "새삼스럽네요" 내 대답은 시큰둥했지만 한번 소용돌이가 친 만감은 쉽사리 가라앉지가 않았다. 고모 말씀은 백 번 지당하고 세월이 한참 지나 그 흔한 미련은커녕 생각나니 되레 부아만 치밀어 올랐음에도 그 여자를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는 못하겠다. "그때 사라진 게 당신에 비해 많이 기울어진 우리집 형편 때문인지, 오르지 못할 나무를 기어오른 나에 대한 철저한 응징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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