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니 '최고'라는 수식어를 거리낌없이 자기 이름 앞에 붙이고 자찬하는 데 서슴지 않는 사람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쥐좆만한 성공을 침소봉대해 초면인 사람 기를 팍 죽여야 자기 존재감이 부각된다고 믿는 저급한 호승심의 소유자일 게 뻔해서다. 그런 차원에서 부산에서인지 한국에서인지 헷갈리지만 좌우지간 최초로 야외 웨딩촬영을 도입한 장본인이라고 자기를 밝힌 손님도 도긴개긴이라고 치부하고 말면 그만일진대 이어지는 인생 궤적이 왠지 서글퍼서 손님 얼굴을 다시 보게 됐다.
아기를 찍는 사진사로 밥 벌어먹고 살다가 우연히 일본 연수를 가서 알게 된 야외 웨딩촬영이라는 아이템을 도입해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단다. 그렇게 성공한 덕에 예식장까지 운영하며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유행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변해 갔고 그걸 간과한 게 패착이었다. 예비 부부들은 자기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늙다리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했다. 화사한 이들은 참신한 전문가를 원했고 아이템을 도입한 개척자라는 이점은 온데간데없이 현장에서 밀려나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일거리는 나날이 줄어들었고 더는 현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때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퇴를 했다. 지금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소지한 카메라로 풍경을 찍으면서 소일한다고 했다. 찍을 줄은 모르지만 보는 건 즐긴다며 케르테츠니 브레송 등 유명 사진가의 이름을 주워섬겼더니 돌아오는 시선이 제법 친근해졌다. 거기에 홀라당 고무돼 위로랍시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진이라는 게 많이 찍고 오래 찍어야 관록이 쌓이는 분야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만 그렇다면 오랜 숙련의 시간을 거친 경험 풍부한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가장 찬란한 인생 컷이 나올 수 있는 유리한 방법이겠는데, 연륜을 세련의 반대말로 여기는 세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점방 들어올 때처럼 큼직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배낭 속의 카메라가 최신형 DSLR인지 오래된 라이카인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