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by 김대일

짧게 깎아 달라고 손님이 말하면 손님 두상을 면밀하게 훑어본 뒤 그 요구의 절반만 깎는다. 바리캉 전원 스위치를 껐을 때 손님이 잠잠하면 작업은 그대로 종료고 행여 군소리를 해대거나 마뜩잖은 표정이 감지되면 그땐 그가 요구한 바 대로 '짧게 깎는' 수정 작업이 들어간다. 그것이 초면인 손님의 요구에 대처하는 내 방식이다. 하지만 이게 비단 나만의 독특한 이발법은 아니다. 이 바닥에서 바리캉깨나 만진 기술자라면 누구나 터득한 손님 응대니까 호들갑을 떨며 지적재산권 보호를 주장할 까닭이 없겠다.

똑같은 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되풀이해야 자기 머리 스타일을 알겠냐고 타박을 하는 단골한테 살짝 미안했지만 덜 깎은 건 잘한 짓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염색을 안 할 요량으로 관자놀이쪽 머리를 거의 밀다시피 깎는 게 그 단골 특징임에도 그보다 바리캉 날 밀리 수를 높여 깎거나 머리 표면에 갖다 대면 꽤 틈이 벌어지게 두께가 나가는 큰 빗을 써서 깎는 식으로 머리털을 남겨 놨더니 더 밀라고 성화여서 부랴부랴 제일 짧은 날로 바꿔 미련없이 밀어댔다. 매달 찾는 단골임에도 못 알아본 내 불찰에서 기인했으니 유구무언이었으나 표정이 영 거슥해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손님이 짧게 깎으랬다고 생각없이 밀었다간 나중에 무슨 원성을 살지 모릅니다. 좀 남겨 둬야 나중에 수정을 해도 하는 거지 깎은 머리털 갖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행히 십분 수긍하는데다 그러는 게 장사 제대로 하는 거라면서 뜻하지 않게 상찬까지 덤으로 받았으니 위기는 모면한 셈이다.

오늘의 교훈.

첫째, 제발 단골손님들 얼굴이랑 스타일 좀 외자. 점방 차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헤매냐. 머리가 나쁘니 손발이 고생이란 말은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 적기에 대는 변명은 구차한 게 아니다. 오히려 손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단 현란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듣자마자 납득이 갈 그럴싸한 논리와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미더운 말발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손님 요구의 절반만 깎는다는 철칙은 만고의 진리니 절대 거슬러서는 아니 된다. 낙장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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