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그 반대편으로 넘겨 헤실헤실한 정수리를 덮는 극단적인 9대 1 가르마 스타일(도저히 떠오르지 않으면 '꼰대 김부장 이모티콘'을 떠올리면 된다)은 자신이 대머리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안간힘이라 안쓰럽지만 손님으로서는 까칠한 축이라 긴장의 끈을 특히 놓쳐서는 안 된다. 한 올 한 올 그 길이와 위치에 대단히 민감해해서 빗질은 물론이거니와 바리캉을 갖다 대기 전에 손님 심기를 슬쩍 엿보는 걸 잊어서도 안 된다. 귀밑머리를 깎자면 반대쪽에서 넘어온 머리카락을 원래 난 쪽으로 훌러덩 넘겨야 커트가 용이해 그리 해놓고 보면 꼭 상투를 풀어헤친 조선시대 대역 죄인의 모양새라 영 거슥하지만 구경났다고 한번 더 쳐다본다든가 하는 우를 범했다가는 그길로 인연은 끝이니 늘 삼가해야 할 바다. 작업이 대충 끝나면 넘긴 머리카락을 원위치시켜 고이 빗질해 원상회복시켜야 하는데 그 절차도 신줏단지 모시듯 정성스러워야 한다.
내 점방 '독두禿頭 클럽' 맴버 중 최고연장자는 부지런하시다. 오십 년 넘게 운영하던 안경점을 아들내미에게 물려줬지만 점방 문은 꼭 본인이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르신이시다. 새벽 6시에 나와 버스 세 코스 가량 되는 안경점까지 걸어가 문 열고 청소하면서 점방을 지키다 아들내미 출근하는 걸 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한 달의 한 번은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내 점방을 들러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정도 잊지 않는다.
"내 머리 깎기가 상그럽제?"
"몇 번 깎고 나니 괜찮습니다. 혹시 제가 실수라도?"
"그런 거 없네. 깎는 거 보이 괜히 미안해서 그러네."
"저도 그런 없습니다. 매번 와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데요."
점방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중 '독두 클럽' 수장이 왔다 가시면 달 바뀐 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