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

by 김대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면 좀 불안하다. 눈치 쌈 싸 드신 손께서 점방 문을 확 열고 들어올까 봐. 내 막내고모뻘인 커트점 원장은 여자다. 고수하던 오전 9시~오후 8시 영업시간표의 숫자 '8'을 '7'로 슬그머니 고친 건 몇 주 전이었다. 문뱃내를 풍기며 느지막하게 들이닥친 적은 종종 있지만 알바도 한참 전에 퇴근한 야심한 밤에 여자 원장 혼자 지키는 점방 문을 손이 왜 잠그는지 그 심보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식겁한 원장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길로 퇴근시간 땡기고 알바하고 같이 퇴근하기로 작정했다.

일껏 영업 단축을 명시한 것까지는 좋은데 영어로 말하자면 'just'보다 'about'를 더 선호하는 것 같은 원장의 애매한 처신 탓에 내 퇴근 시간은 늘어난 고무줄 신세다. 마감 준비하래서 여기 닦고 저기 다 치운 뒤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제끼려는 찰나, '머리 좀 깎읍시다' 보무도 당당하게 의자에 털썩 앉아 버리는 손을 망연하게 쳐다보는 나는 오늘도 제 시간에 퇴근하긴 글렀다면서 천추의 웬수 같은 그 손의 목에 커트보를 조르듯 두른다. 행사 늘어지는데 애국가마저 4절까지 완창을 시키면 받은 거 없이 그리 밉더니만 눈치도 모자라 염치까지 세트로 쌈을 싸셨는지 '염색도 같이!' 씨부리는 진상에게 '그 입 다물라!' 일갈하고 점방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퇴근 준비하라는 예령을 내린 원장인데 내가 언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했겠느냐는 듯 안면을 몰수한 채 전열 갖춘 병사 같은 비장한 얼굴로 돌변하고서는 한 손에는 빗, 한 손에는 바리캉을 다시 든다. 그러면 나는 다 씻어 둔 염색 그릇과 브러쉬를 말끔하게 닦아 염색약을 다시 탄다. 커트하는 데 5분(원장이 서두르면), 염색을 바르고 물들 때까지 기다렸다 샴푸한 뒤 뒷정리까지 25분, 퇴근은 30분 뒤로 지연이다.

동종업계의 대선배인 부친한테 대중없는 퇴근 시간을 하소연했더니 업주친화적 발언이 돌아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받고 싶은 게 주인 맘이다. 그걸 가지고 주둥이를 댓 발로 내밀었다간 이 바닥에서 일 못 부쳐 먹는다."

지엄하신 부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고용자雇用者와 고용자雇傭者 분간이 짜증나듯 기분만 상하고 선뜻 와닿지가 않는다. 시간표는 지키라고 걸어두는 법이고 고용자와 고용자 간의 신의는 서로에게 유익한 덕목이다. 얼렁뚱땅 갉아 먹은 시간이 인생의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하루의 유일한 30분이라면 그 육중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의 값어치 때문에라도 허투루 유용할 순 없을 게다.

오버타임해 2만 원을 번다면 한 달(주 6일이니 총 25일로 잡고)이면 50만 원의 매출이 더 일어난다. 그 오버타임 30분을 한 달로 계산하면 12시간30분. 세상을 바꾸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러니 돈으로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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