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연상법

by 김대일

점방 드나드는 손님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 도플갱어 식 연상법이 있다(내 멋대로 명명했으니 그런 게 있었나 검색일랑 마시라). 즉 얼굴깨나 알려진 유명인과 비슷한 구석이 눈에 뜨이기만 하면 그와 똑 닮았다고 머릿속에 입력시켜 놓고서는 손님한테까지 입방정을 찧고 까불어 대는 거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가급적 미남형 내지 호감형 면상을 가졌거나 인물은 좀 빠져도 스캔들 따위 잡음이 없이 무던한 평판을 유지하는 셀럽을 들먹거려야지 "에이, 설마 그럴라구" 손사래를 쳐도 손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며 흐뭇해하는 걸 목격할 수 있고 큰 힘 안 들이면서 단골 한 명 확보할 수가 있는 게다.

손석구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 2>가 동시에 흥행에 성공하면서 포텐이 터진 배우로 대체로 알고 있지만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서 성질머리 더러운 욕쟁이 CF감독으로 분한 손석구에 내 시선은 머물러 있다. 특히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 여주인공 중 한 명인 은정(전여빈 분)과 고깃집에서 술 마시는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나만의 하이라이트다. 얼마나 인상이 깊었으면 그걸로 글까지 썼다.

제목이 <멜로가 체질>이랬던가. 세 여주인공 중 은정(전여빈 분)은 옛 애인의 허깨비하고 먹고 놀고 얘기한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나 본데 계속 말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아 잘 모르니 설명은 생략하고, 하여튼 잘 나가는 CF감독이면서 은정처럼 전 재산을 기부해 기부계의 양대산맥, 기부계의 두 또라이 중 한 사람인 상수(손석구 분)가 은정과 티격태격하다가 어찌어찌해서 ​술자리를 가지는 장면. 상수는 여태 말하지 않았던 서로의 얘기나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고 드라마 수록곡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만 들리고 디졸브.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얘기를 하는 은정이나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상수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은정이 옛 애인의 허깨비와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놓는 걸 이해하려는 듯 보였다. 배경으로 깔리던 음악이 그치고 장면이 전환되자 상수는 은정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다. 그리고 잔을 들면서 말한다.

- here's looking at you, kid.

의아해하는 은정을 보면서 덧붙인다.

- 카사블랑카에 나온 대사야. 우리나라에서 참 멋지게 번역됐지. 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잔을 드는 상수. 맞춰 줘야 하니까 은정도 짠이나 하려고 잔을 든다. 상수는 그 잔을 지나쳐 은정의 눈에 잔을 가져다 댄다.

수배자의 인상착의(특히 눈매)를 기억해뒀다가 체포하는 우치무라나 무엇을 보건 이해하겠노라며 은정의 눈동자에 건배를 하는 상수나 두 눈을 통해 상대를 알아챘다. 다른 데는 몰라도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보다. (내 글 「here's looking at you, kid」, 2021.03.05.에서)

그 손님을 처음 봤을 때 은정의 눈동자에 소주잔을 갖다댈 때의 서글서글하면서 선한 손석구 눈매와 똑 닮았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혹시 손석구라는 배우하고 닮았다는 소릴 안 듣습니까?"라는 질문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고. 처음 본 깎새한테서 별소리 다 듣는다는 듯 얼떨떨해하면서도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이후로 드문드문 점방을 찾을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손석구 닮은 분'이라고 아는 체를 했다. 엊그제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혼부부한테 자그마한 재미를 선사해줬다면서 고마워해서 이번에는 내가 얼떨떨했다.

"와이프가 배를 잡고 웃어요. 머리 깎고 오면요."

"?"

"하고많은 배우 중에 손석구 닮았다는 사람은 커트점 주인밖에 없다면서요. 어딜 봐서 손석구냐고 막 웃어요."

"와이프한테 <나의 해방일지> 구씨 아저씨, <범죄도시 > 강해상 말고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손석구를 보라고 하세요. 판박이라니까."

사람 속을 디다보질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멜로가 체질>에서 CF감독으로 나오는 손석구를 빼다박은 그 손님은 극중 손석구처럼 ​쌀쌀맞고 인정머리 없으며 장난기까지 가득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인물일 게 분명하다. 나한테 그는 손석구다. 와이프 설득 작전은,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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